옛말에 "애 볼래? 밭 갈래?" 하면 "밭 간다."라고 대답한다는 말이 있다.내 생각도 사실 비슷하다. 요즘 "밭 간다. 남은 시간에 애 보라고 할까 봐 옆집 밭까지 갈아준다 "라고도 하지 않나.
전에 공무원으로 일할 당시, 친분 있는 남자 동기가 육아휴직 1년 낸다고 신나는 모습을 보이더니, 1년을 못 채우고 빠르게 복직을 했길래 이유를 물었다.
"나... 휴직 동안 육아 우울증 왔어..."
낳아보기 전엔 모른다.
내 손으로 직접 키워보기 전까진 모른다.
결혼 후 현재까지 11살, 8살의 두 아이를 직접 키워보니 육아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중...]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부부간의 관점도, 대화 주제도 그전과 확연히 달라진다.더불어 육아로 인해 추가적으로 생기는 집안일이 엄청 많다.그런데 대부분의 아이가 있는 가정은 남편보다는 아내가 아무래도 자잘한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된다.
부부가 육퇴 후 하루를 마무리하고 드러누웠더라도 아내의 하루는 끝난 듯 끝나지 않는다. 남편이 TV로 토트넘 축구경기를 보는 사이에도 아내는 아이들이 잠든 사이를 이용해 육아에 관한 분노의 검색질이 시작된다. 겉으론 육퇴 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정신노동 중이다.
* 영유아기 아이를 둔 엄마 같은 경우
아이 발달 단계에 맞는 오감을 자극할 놀잇감은 머가 있을지.
내 아이에게 대박이 날만한 전집은 무엇인지.
기저귀는 어느 사이트가 카드 할인, 쿠폰 쓰면 더 최저가로 살 수 있는지.
내일은 또 어떤 걸 해먹이면 좋을지
아이가 경험해보지 않은 집 근처 흥미로운 체험은 머가 있는지.
조리원 동기 아이는 한글책 좔좔 읽을 줄 안다는데
우리 집 애는 이제 가나다라 겨우 익히는데 어떻게 서포트를 해야 할지.
이 영어유치원이 더 좋은지 저 영어유치원이 더 좋은지.
아님 가계 생각해서 영어 비중이 좀 더 큰 일반 유치원으로 보낼지 말지.
지인에게 물어도 보고 카페에 질문도 올려보며 요기가 더 좋은지 조기가 더 좋은지 고민한다.
* 학령기 아이를 둔 엄마의 경우
아이의 지지부진한 과목은 어떤 식으로 채워줄 것인지.
공부라면 절레절레하는 아이를 좀 더 기다려줄 것인지 앞에서 이끌어줄 것인지
아이가 아까 살짝 내비친 말에 교우관계는 문제가 없는 건지
성교육은 어느 시점에 어떤 식으로 해주는 게 좋을지.
사춘기랍시고 매사 삐딱선을 타는 내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뒷집 영희, 앞집 철수는 요런 선행 저런 심화 한다는데 집에서 폰이나 보며 나뒹구는 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교육과 노후대비의 중간에서 아이의 요 사교육이 진짜 필요한 건지.
겨울방학 땐 이 특강을 들어보게 할 건지 저 특강을 들어보게 할 건지.
필요하다면 요렇게 조렇게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도와줄 것인지.
요정도만 써봐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편보다는아내들이 하는 고민이다. 나도 잠들기 전까지 아이에 관한 생각과 고민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때가 많다.
어쩌다 내 컨디션 난조로 불쑥 올라온 짜증을 아이에게 용가리 불 뿜듯 화내고 나서 풀이 죽어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오늘의 일과를 더듬고 죄책감으로 시달리며 잠들 때도 있다. 아이를 예쁘게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그 의욕이 큰만큼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육아 스트레스, 육아 우울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이에 관한 고민의 시기를 겪었고, 현재도 육아 진행 중이다 보니 육아라는 단어 앞에 남편의 가정 충실도. 가사. 육아 분담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남편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서로 머 좀 해달란 얘기 안 해도 너무 쿵짝이 잘 맞는 거 같아. 그렇지?"
"당신 진짜 고생했겠네."
참 위로 되고 힘이 나는 말이다. 나는 가사분담이나 육아에 있어서 남편에게 특별히 불만을 갖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늘 남편의 적극적인 가사 분담, 육아 참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실 신혼 때부터도 집안일을 늘 공동이라고 쐐기 박지 않았다. 그저 당연스레 알아서 찾아서 했다. 그저 서로가 "내가 할게."가 입에 붙었다.
남편은 퇴근해서 내 낯빛을 보거나, 내 목소리만 듣고도 귀신같이 나의 하루를 읽었다. 내가 힘들어 보인다 싶으면 센스 있게 가제트 팔이 튀어나와 집안일이건 육아 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애들 숙제까지 빠르게 챙겨주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슈퍼맨 같은 그가 너무 고맙다.
물론 나도 그리한다. 퇴근한 남편의 어깨만 봐도 오늘의 일과가 그려지고 나의 포지션을 정하게 될 때가 있다. 밖에서 남의 돈을내 주머니에 넣어온다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너무 잘 안다. 일에 지쳐 들어온 날은 짧은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주려고 한다. 빠르게 저녁식사를 하고 남편이 쉴 수 있도록 방으로 들여보내고 몇 시간은 아이들도 들락거리지 않게 문을 닫아둔다. 아니면 마사지라도 받으러 갈 수 있도록 그를 등 떠민다. 그 배려 속에서잠시 충전된 남편은 또다시 슈퍼맨이 되어 가사와 육아를 함께한다.
또 분리수거가 좀 많이 쌓였는데 분리수거하는 날 함께 돕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 남편은 내게 늘 미안해했다. 어떨 땐 내가 못 본 사이 출근하는 본인 차에 분리수거 폐품들을 실어가기도 했다.
"내가 오늘 못 도와줄 거 같아서차에 실어갈게.
사무실 건물에 분리수거하는 데가 있는데 다행히 지정 날짜가 없어."
분리수거로 고생할 것 같은 아내를 위한 그런 배려 깊은 한마디가 사실 너무 고맙다. 이미 그 한마디로 혼자 분리수거 몇 번을 해도 힘이 날 말이다. 모든 면에서 그렇게 생각해주고 행동해주는 그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맙다.
"여보! 걱정 마. 내가 할게. 쓰뤠기 갖고 다니는 남자 하지뫄아~! 내가 이래 봬도 당신 그렇게 안 키웠다!"
몇 번의 남편 말 한마디 기억에 이후 다용도실에 잔뜩 쌓여있는 버릴 재활용품의 양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 있다면 가정일에 있어서 니일 내일이라는 명확한 구분도 가사 분담 표를 만들 이유도 없다. 서로를 위한 배려만 있다면 상대가 손 한번 갈걸 내가 먼저 나서서 신경 쓰면 된다. 그러면 애초에 공평한 가사분담이라는 말 자체도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서로 상대를 위해 조금만 더 부산 떨어주는 게 부부간의 정이고 배려이다. 그 모습 안에서 아이들도 건강한 가정의 모습을 배운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