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행사 사기사건.
횡령 혐의 및 사기죄. 파산으로 기사에도 나올 만큼 수십 명이 당한 여행사 사기 사건이었다.
그 피해자 중에 우리 부부가 있었다.
2009년 10월 결혼 준비를 앞두고 나는 일적으로 정신없이 바쁜 시기였다. 결혼 준비를 여유롭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도와주지 않았다. 그나마 주말에 조금 여유로웠던 남편이 나를 대신해 친정엄마와 예식장을 정해가며 결혼 준비를 더 많이 신경 써 줄 때였다. 그 와중에 결혼 준비로 신혼여행만큼은 내가 신경 쓰고 싶었다.
나는 신혼여행으로 동유럽을 가고 싶었다. 특히 야경이 아름답다는 체코 프라하. 내가 일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던 시기라 그런지 예비신랑과 결혼식 후 훌쩍 떠난 곳이 낭만 가득한 체코 프라하라고 상상하니 신혼여행만큼은 내가 나서서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비신랑이었던 남편과 패키지 투어를 각자 알아보는데 그와 내가 알아보는 여행사의 금액 차이가 상당히 있는 거다.
"오빠~ 오빠는 너무 비싼 여행사만 알아보는 거 같아. 내가 알아본 데가 훨씬 저렴해~ 당신 안 되겠다. 신혼여행만큼은 내가 알아서 예약할게. 나한테 맡겨요."
일하는 짬짬이 분노의 클릭질을 했다. 훨씬 저렴하고 알찬 패키지가 있는 여행사가 어딘가에 보석같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한동안 모니터에 눈깔 빠지도록 검색한 끝에 마음에 쏙 드는 패키지여행코스의 여행사를 드디어 찾았다. 난 일하는 중간 짬을 내어 여행사에 통화하며 계약금 200만 원과 여권사본을 보냈다.
쿠팡 로켓 배송 뺨치는 로켓 이체와 동시에 남편과 결혼식 후 동유럽으로 향할 비행기에 오르는 상상을 하니 일하는 중간에도 미소가 새어 나왔다.
분노의 클릭질을 통해 최상의 신혼여행지를 선택하고, 난 그 와중에 알뜰한 현모양처로 등극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터져버렸다. 결혼식을 얼마 앞두지 않고, 여행사에서도 특별히 어떠한 안내도 없는 상태가 이상해서 여행사에 전화를 해보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일 다시 해봐야겠다.'
다음날 수차례 전화를 해봐도 연결되지 않았다. 급하게 인터넷을 뒤졌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오빠... 아무래도 여행사 이상해. 전화를 안 받아."
우리의 결혼식날까지 여행사는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우리 신혼 여행지인 체코 프라하는 물 건너가버렸다. 뜯겼다. 신혼여행비.
급하게 예비신랑인 남편과 상의 후 타 여행사를 통해 태국 푸껫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난 이 상황이 예비신랑에게 너무 미안해서 눈치가 보였다. 남편은 머라고 하진 않았지만 사실 고작 그거 하나 신경 썼는데 뭐 하는 거냐고 할 것만 같았다.
남편은 내가 사고를 치거나, 어떤 황당한 상황이 있더라도 침착한 대응을 하는 사람이지 그걸로 욱하는 사람은 아니다. 남편은 내게 군소리 하나 없이 어쩔 수 없으니 더 속상해하지 말고 동유럽으로 다시 알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난 여러 감정으로 동유럽으로 차마 노선을 다시 정할 순 없었다. 태국 푸껫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한참 지난 몇 달 뒤, 남편을 통해 돈을 되돌려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남편은 내가 미안해할까 봐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고, 조용히 경찰서와 서울, 경기도를 몇 번씩 넘나들며 유령업체가 되어버린 그 회사 관계자들을 수소문해서 대응 서류를 준비하고 돈을 받았다는 거다. 조용하지만, 완벽하게... 그 덕에 우린 돈을 95% 정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사실 피해자 대부분이 못 받았다.)
내게 화 하나 안 내고 뒤에서 수습을 다해줬다. 나는 지금도 늘 이런 식으로 대처해주는 남편이 너무 고맙다.
문득 결혼 앞두고 일어났던 그 황당한 일이지만, 남편의 고군분투한 수습을 떠올리면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부부는 사랑만 갖고는 긴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것 같다.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고들 하지 않나. 결혼 십여 년이 넘어보니 조금은 알겠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 그 이상의 고마움, 감사함이 있어야 한 번씩 그때를 되새김질하며 서로가 단단해질 수 있는 거라고...
'여보!
나 사실 그때 내가 싼 똥 조용히 수습해준 당신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