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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코드 맞는 부부

남편의 개그 본능_

by 눈꽃


어느 화창한 주말.

나와 남편 각자 외출을 하던 날이었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나가려던 중, 그 와중에 남편을 웃기게 만들고 싶었다. 나는 입고 있던 위아래 옷을 남편 보란 듯이 안방 입구에 벗어 놓고 나갔다. 그야말로 뱀 허물 벗어 논거처럼... 몇 시간 뒤 집에 들어왔더니 나보다 늦게 나간 남편은 외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안방 입구는 이런 광경이었다.



내 옷 옆에 추가된 서방님 옷



내게 왜 이렇게 벗어놓고 나간 거냐고 할 법도 하지만, 남편은 내가 이미 장난친 걸 알고 그 옆에 내가 벗어놓은 모양새로 나란히 자기 바지를 벗어놓았다. 나는 별거 아닌 걸로도 쿵짝이 맞는 남편이 너무 재미있고 웃기다. 툭! 하고 내가 장난을 치면, 하나 더 얹어서 준다. 남편과 나는 요즘 소위 말하는 티키타카가 잘 맞다.



며칠 전, 내가 사는 동네인 동탄 호수공원에서 아나바다 행사가 열렸다. 일부러 알고 찾은 건 아니었는데 마침 공원에 바람 쐬러 간 날이 행사를 하는 날이다. 난 거창하진 않아도 남편과 이런 소소한 구경하는 데이트가 참 좋다. 이리저리 구경하던 중에 남편이 내게 말한다.



"색시 요기서 옷 한 벌 쫙 빼 입혀줘? 아님 우리 마누라 서울 평화시장 한번 데려가야겠네.

내가 까만 비닐봉다리 가득 채워서 우리 마누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피 한번 만들어준다."



난 웃으면서 그에게 눈을 흘긴다. 난 스스로 비싼 옷을 사 입는 편이 아니라서, 한 번을 사주더라도 내게 늘 좋은 옷만 사주려고 하는 남편 그런 개그가 더 귀엽게만 느껴진다. 이런 소소한 장난가 많은 남편이 너무 좋다.



지난주 설악산 산행 중에도 우린 별거 없는 대화지만 서로 한 번씩 깔깔거리며 오른다. 계곡물을 지나면서도 내게 개그본능이 툭 튀어나온다.



"여보~ 여기 당신 목욕탕이야?"


"응?"


"선녀탕~ 당신 목욕탕~"



예쁜 말을 가장한 귀여운 개그로 나이 사십 인 나를 빵 터지게 만든다. 남들 보기엔 썰렁하고 머가 웃긴지 모를 별거 아닌 거에도 우리는 대화 중간중간 웃기다며 서로의 등짝도 툭툭 거리며 까르르 웃는다.

아무 얘기나 툭 소재를 풀어놓으면 그 작은 소재 하나 갖고도 온종일 웃고 떠들 수 있는 사이.

개떡 같이 말해도 서로가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어느덧 만난 지 19년째라 그런지 웃는 포인트도 비슷해지고, 울컥하거나 눈물이 흐르는 포인트도 비슷해진다. 부부간 코드가 맞다는 이 새삼 감사한 부분이면서도 인생을 함께 살아내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이를 먹으면서 더더욱 느낀다. 인생 머 있나. 부부가 같은 포인트에서 같이 웃고, 울고, 공감하는 게 있어야지 싶다. 난 이런 이유로 정신적으로 무장해제된 채 남편과 대화할 수 있는 주말이 늘 기다려진다.



결혼 몇 년 차에도 계속 불 같은 사랑이면,

그건 아마도 병원을 한 번 들러봐야 할 것 같고,

적절히 따뜻하고 뭉근한 애정에,

중간중간 빵 터지는 재치 한 스푼이면 그 이상 무슨 행복을 더 바랄까 싶다.




"우리 마누라 비행기 가방 하나 사줄까?

사천사백만원 밖에 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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