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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by 비비드 드림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가을 소풍 장소가 놀이공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부모 1명이 동반해야 하는데, 첫째의 하교 후 일정 때문에 고민했었다. 그러다 추가 인원 접수가 가능한 걸 알게 된 후 온 가족이 다 같이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얼마 전부터 놀이공원에 간다고 들떠있는 아이들. 나도 어릴 때 이렇게 좋아했었나 추억에 잠기며 함께 설렜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놀이공원에 가는 날이 며칠 남았는지를 열심히 세는 아이들이 그저 귀엽기만 했다.


둘째는 5살이라 동물원 위주의 구경이 메인이 될 터이다. 하지만 9살인 첫째는 키가 120cm가 넘었기 때문에 드디어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을 거라며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다. 같이 영상을 찾아보며 이미 놀이기구의 이름까지 외우고 그건 꼭 타겠다며 노래를 불렀다.


놀이공원가 가기 하루 전날 새벽. 잠결에 내 손에 스친 아이의 얼굴이 너무 뜨거웠다. 잠결에도 너무 뜨거움을 감지하고 이마를 짚어보았는데 육아 9년 차 엄마인 나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고열이야!


거실로 나와 체온계를 가지고 다시 들어가 열을 재보니 38.6도. 부랴부랴 해열제를 먹이고 어플에 체온과 해열제 복용을 기록했다. 그리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도 일어나서 엄마가 준 해열제를 먹으며 말한 첫마디를 내뱉는다.

나 놀이공원 못 가?

피식 웃음이 났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구나 이게. 오늘 상황을 보자고 말한 뒤 다시 재웠다.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당장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대해 부지런히 생각해야 했다. 일주일 전 둘째 아이 독감으로 연차를 사용했고, 또 엄마의 제사 일정으로 연차 사용, 아이들 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사용한다 해도 그날 회사에서 꼭 해야 할 업무가 있었다. 결국 남편이 오후 반차를 쓰고 오면 내가 오전 반차 사용 후 오후엔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날 일정을 조율하고, 출근 전까진 아이에게 다시 집중한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녀오고 열도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엄마의 역할을 하면서도 직장에서의 역할도 있다 보니 이렇게 갑자기 나는 열이 항상 가장 당황스럽다. 물론 1순위는 나의 아이다. 어떠한 중요한 업무가 있다 해도 내가 아이 곁에 있어야 하는 순간엔 회사는 영원히 2순위 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아이는 더 이상 열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은 마음 편하게 남편과 교대하고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열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당사자도 보호자도 준비하지 못하게. 아무리 육아 달인도 긴장하게 만든다.


애들이 완전 아기였을 때엔 열이 나면 밤을 새워가며 수시로 열을 재고 열이 안 내리면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요령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열이 올라 힘들면 먼저 잠에서 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조금씩 눈도 붙이면서 케어를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더 요령 있게 케어가 가능하니 앞으로는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열을 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불청객인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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