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법

by 안녕 콩코드


《말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도, 우리는 산다》

― 삶을 견디게 해 준 감정에 대하여, 서른 편의 기록


1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법


혼자 있는 시간이 처음 필요해진 건, 더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키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었다. 말이 아닌 눈치로 이뤄지는 대화, 침묵 속에서만 느껴지는 긴장, 끊임없이 나를 조정해야 하는 관계들. 겉으로는 평온하게 웃고 있지만, 속은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다. 그런 무게를 오래 안고 있으면 어느 순간 마음의 중심이 휘어진다.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없이, 그러나 분명히. 숨이 턱 막히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것만 같았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되찾기 위해, 아무도 없는 방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의 무너진 모서리를 들여다보았다.


처음 혼자 방에 앉았을 때는 온통 낯설기만 했다. 익숙했던 소음이 사라지자 되레 마음속 소리가 커졌다. 누군가의 말소리, 휴대폰 알림, 뉴스의 소란스러운 진행이 가려주던 내면의 울림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이리저리 휘몰아치는 생각과 감정들. 나는 그것을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창밖을 바라보거나, 음악을 켜거나. 책장을 넘기는 손길조차 쉴 틈 없이 바빴다. 어떤 행동도, 사실은 내 안의 공허와 불안을 잠시 덮는 일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그 적막 속에서 마주하게 될 ‘진짜 나’였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던 건,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동안 ‘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혼자는 곧 외로움과 동의어처럼 여겨졌고, 그것은 실패나 상실처럼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 잊힌 존재처럼 스스로를 정의했다. 친구가 없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라는 상태는 고통스럽고 피해야 할 감정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혼자가 외로움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로움은 누군가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이지만, 혼자는 나 자신과 온전히 머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내 삶에서 가장 귀하고 깊은 순간이었다.


어느 날, 조용한 밤이었다. 창문을 열어두니 바람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었고, 달빛이 희미하게 방 안을 채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고요 속에서 내 숨소리와 마음의 박자가 어우러졌다. 그 순간, 도망칠 필요도 숨길 이유도 없었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닿는 시간.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진짜 내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가끔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마저도 내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쓸쓸함은 감정의 바다에서 파도처럼 몰려왔다가 이내 지나가고, 그 너머에는 더 깊은 평온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바라보고, 나를 품어주고, 다독이는 법을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배웠다. 아무도 없는 방 안, 조용한 카페 한 구석, 혹은 숲길을 걷는 어느 오후. 그런 순간들은 다정한 속삭임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다고. 너는 혼자여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는 혼자 밥을 먹는 일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함께 먹는 것이 당연했고, 혼자 식탁에 앉으면 허전함과 어색함이 더 컸다. 음식을 앞에 두고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서둘러 식사를 마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끔 혼자 카페에 앉아 천천히 음료를 마시고, 책장을 넘기며 나를 살핀다. 그 고요한 집중 속에서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내 감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시간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귀한 순간들이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도 처음에는 두려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낯설었고, 어딘가 비워진 듯한 감각이 따라다녔다. 혹시 외롭고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컸다. 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혼자만의 여행은 오히려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골목을 천천히 걷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면 머물고, 피곤하면 그대로 쉬었다. 누구의 일정에도 구속받지 않는 그 자유는, 곧 내 삶을 다시 나의 것으로 되찾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여행 속에서 나의 기호, 리듬,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삶이 무겁게 느껴지던 어느 시기,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났고, 마음 한구석이 헐거워졌다. 그때 혼자 있는 시간은 도피가 아니라 회복의 시간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천천히 안정되는 걸 느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외부의 기대와 요구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기 치유이자, 자기 성장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성장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만들어갔다.


처음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허전하고 불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괴롭고 어색했으며, 마음이 텅 빈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불안과 마주하고, 그 시간을 견디면서 나는 조금씩 변했다. 예전엔 외면하던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고,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괜찮다'는 작은 확신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큰소리로 외치지 않아도, 깊이에서 울리는 묵직한 믿음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때로는 깊은 고독으로 나를 이끈다. 하지만 그 고독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명확하게 해주는 시간이다. 타인의 말과 시선에 가려져 놓치고 있던 내 마음의 목소리가 또렷해지고,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그 질문의 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난다. 조용히, 아주 느리게.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알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혼자 있는 시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은 누군가의 부재에서 오는 공허함이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고요함이다. 외로움은 안달하는 마음이고, 고독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고독 속에서 나는 내가 놓치고 있었던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감정이라는 조각들이 하나씩 떠올라 나를 스쳐간다. 그 조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내가 왜 아팠는지, 무엇이 슬펐는지를 천천히 되짚는다.


혼자인 시간에는 생각들이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말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들, 끝나지 않은 질문들, 이미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이 고요한 공간 안에서 천천히 떠오른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며 상처를 다독이고, 미뤄두었던 숙제들을 조금씩 풀어간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위한 ‘내면 여행’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쩌면 그 자체로 가장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이 항상 행복하거나 편안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외로움과 불안이 몰려오고, 나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날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런 감정들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조용히 함께 숨 쉬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혼자임에도 혼자가 아닌 느낌, 그 감각은 나를 더 강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마치 혼자서 빚어낸 나만의 조율처럼.


혼자 카페에서 마주한 한 잔의 커피가 내게 준 위로, 혼자 걷는 길가에서 만난 작은 들꽃이 건넨 조용한 기쁨, 혼자 여행 중 마주한 낯선 풍경이 전해준 설렘까지. 이 모든 순간들은 ‘혼자’라는 이름의 고요 속에서 나를 풍요롭게 했다. 함께일 때는 놓치기 쉬운, 그러나 삶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감정들이다.


나는 이제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이 없으면 나는 흔들리고 불안해진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는 나를 닦아내고, 나를 연습하며, 내 삶을 재정비한다. 혼자라는 시간은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귀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기에 나는 더 단단해지고, 더 너그러워진다. 스스로를 수용할 줄 알게 되면, 타인도 이전보다 가볍게 안아줄 수 있다.


한때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있어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할 줄 아는 사람. 그것은 고독의 힘이며, 자기 사랑의 표현이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의 고요함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잠시 혼자가 된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나만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을 듣고, 내 몸을 쉬게 하며, 내 영혼을 돌본다. 혼자 있음은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들고, 더 깊은 사랑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 시간은 나의 치유이고, 나의 자양분이며, 나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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