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 속에서 자라왔다. 학생일 때는 성적이 좋은 아이가 되어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로서, 친구로서, 직장 동료로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잘 해내야 했고, 뒤처지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되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어릴 적, 장래희망을 적을 때마다 늘 망설였다. ‘되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되지 않아도 괜찮은 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과학자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작가가 되었지만, 나는 늘 그 둘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되지 못한 무엇, 아직 닿지 못한 어딘가. 그 감각은 언제나 내 마음 한쪽에 조용한 결핍처럼 자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의 질문도 달라졌다.
“나는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가?”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내 삶을 충분히 느끼고 있는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쓸수록, 나는 점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갔다. 성공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나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삶은 차츰 말이 사라져 갔고, 하루가 끝나면 어딘가 묘하게 텅 비어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감각만은 깊고 또렷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아주 작은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지금 이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 질문이 두려웠다.
뭔가가 되지 않으면 무가 되는 듯한 사회에서,
존재가 아닌 성취로 평가받는 삶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쩐지 미완성이고 실패처럼 보였다.
하지만 점차 알게 되었다.
그 미완성이라는 감각조차 나였고,
실패라 여겼던 순간들 속에도
내 삶의 무늬가 스며 있음을.
나는 이제 어떤 직함도 없이, 그저 ‘나’로 존재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름 없이 불리는 하루를 보내더라도
그것이 결코 덜 소중한 삶이 아님을 조금씩 믿게 되었다.
성취가 없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그날 하루를 무사히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 있다.
삶은 커다란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뜨거운 차 한 잔을 조용히 마시는 시간,
햇빛이 손등에 스며드는 순간,
누군가와 나눈 짧지만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요한 오후.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으로 머무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어떤 날은 특별한 이름 없이 살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나는 오늘도 나로 살아냈고,
그 하루를 견뎠으며,
어떤 감정은 조용히 흘려보냈고,
어떤 생각은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냐고?”
하지만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살아가고 있다고.
나로서, 하루를 무겁게 혹은 가볍게 살아내고 있다고.”
그 한마디가 요란한 성취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나는 이제 내 이름 앞에 무엇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런 역할 없이도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
침묵 속에서도 편안한 관계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내 마음.
그 모든 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임을 나는 안다.
우리는 모두 완성되지 않은 존재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껴안는 용기야말로
가장 온전한 성장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나는 그 길을
느리지만 성실하게,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나’다.
바라보는 눈빛,
두 손의 온기,
다정한 말 한마디에 담긴 나.
그 소소한 장면들 속에서
나는 분명히 숨 쉬고 있다.
세상이 붙여주는 이름 없이도,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간다.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말없이 빛나기도 하는
그런 존재로서, 오늘도 나는 썩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