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

by 안녕 콩코드

세상은 너무 빠르다. 시계는 초 단위로 사람들을 재촉하고, 타인의 성취는 조용히 나의 부족함을 드러낸다. 뉴스 피드에는 늘 누군가의 ‘이루어낸 순간’이 올라오고,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라는 잣대로 평가된다. 그 틈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충분히 빠르게 가고 있는 걸까?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닐까?


한때 나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애썼다. 나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친구를 보며 불안했고, 한 해 먼저 목표를 이룬 누군가를 보며 초조했다. ‘잘 지낸다’는 말을 들어야만 안심이 되었고, 누군가보다 나아야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런 마음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주었는지를.

타인의 시계를 내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나는 늘 모자랐고, 늘 늦었으며, 늘 아쉬웠다. 다음을 준비하느라 지금을 놓쳤고, 비교하느라 나를 잃었다. 속도를 높일수록 삶과 엇박자가 나고, 결국엔 나 혼자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어디까지 가야 만족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이루어야 안심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그 속에 서 있는 나 자신만이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많은 기준을 안고 달려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준 대부분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내가 선택한 속도로 살아가고 싶다. 조금 늦어도, 천천히 도달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어디에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걸어왔느냐이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깊이 느끼는 것도 아니고,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천천히 걸을 때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고, 서두르지 않을 때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어떤 날은 그저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아무 목적 없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품에 안고 싶다. 그런 시간은 눈에 보이는 성취를 남기지 않지만, 나를 다시 나답게 되돌려 놓는다.


느리게 산다는 것은 세상의 시계를 내려놓고, 나만의 시계를 품겠다는 선언이다. 나의 속도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이며, 내가 진정으로 지키고 싶은 것들을 놓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야말로, 앞으로의 길을 비추는 가장 단단한 빛이 될 것이다.


세상이 정한 기준은 더 이상 나의 중심이 아니다.

‘이 나이쯤엔 이만큼은 해야지’라는 말도, ‘그 속도로는 안 된다’는 말도 이제는 내 삶을 규정하지 못한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에 기대어 살지 않는다.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듯, 내 삶에 맞는 리듬으로 걸어간다.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나는 느리게 자라는 나무들이 좋다.

해마다 눈에 띄게 크지는 않지만, 어느 날 문득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그 깊은 뿌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땅속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잡아왔을 것이다.

나의 삶도 그런 나무처럼, 소리 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아도, 안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다는 확신을 놓지 않는다.


느리다는 건 무능이 아니다.

조급하지 않다는 뜻이며,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자주 돌아본다. 실수를 줄이고, 마음을 돌보고, 관계를 소중히 품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 놓치게 될 것들 — 그 귀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삶은 경주가 아니다.

내가 자라날 시간과 방향은, 오직 나만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느린 걸음 속에서 비로소 내가 나답게 살아간다.


가끔은 누군가가 나보다 앞서가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조바심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교는 결코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불필요한 욕심과 피로만을 남길 뿐이다.


나는 내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어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어제보다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만의 계절을 따라, 나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느리지만 단단하게.

내가 걸어온 모든 발자국을 사랑하고, 그 발자국이 만들어낸 지금의 나를 존중한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갈 것이다. 누군가는 앞서가고, 누군가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호흡을 지킬 것이다.

속도에 쫓기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으며, 조급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충실하게.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는 나답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나에게 속삭인다.

나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나의 삶은 나만의 시간에 맞춰 천천히 피어날 테니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조차, 나는 충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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