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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철학

두 발로 생각하는 인간, 길 위에서 만난 세계

by 콩코드

"걷는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걷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걸음은 목적지로 향하는 기능적 발걸음입니다. 출근길, 마트,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사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문득, ‘목적 없이’ 걷기 시작하면 세상은 달라집니다.


초가을 아침, 공원 길을 걷습니다. 발밑에 남은 이슬과 떨어진 낙엽의 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바람은 차갑지만 부드럽게 얼굴을 스치고, 나뭇가지 사이로 아침 햇살이 불규칙하게 춤춥니다. 발자국 소리가 고요 속에서 울려 퍼집니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닌 사유의 행위가 됩니다.


걷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목적을 위한 걸음, 도착을 위해 걷는 걸음.

둘째, 사유를 위한 걸음, 그 자체로 완결된 행위로써 걷는 걸음.


프레데리크 그로는 후자를 철학적 걷기라 부릅니다. 그는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길 위를 걸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되살리며, 걷기가 인간에게 주는 자유와 변화를 탐색합니다. 걷기는 단순한 신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사고와 삶을 잇는 다리이며, 우리의 내면을 조율하는 행위입니다.



철학자들의 걸음 ― 길 위에서 사유하기

걷기는 철학자들에게 단순한 여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생각의 방법이자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길 위에서 사유하며, 그들은 자신과 세계를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루소 – 나를 발견하는 걸음

루소는 매일 혼자 숲 속을 걸었습니다. 길 위에서 그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나와 마주했습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걷기 속에서 완성된 그의 고독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숲길을 걷다 보면 발밑의 흙냄새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마음에 스며듭니다. 발걸음 하나, 마음속 질문 하나가 서로 맞닿으며 그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길을 따라 흐르는 작은 개울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까지, 모든 감각이 사고를 자극합니다. 루소는 이 순간을 통해 사회적 나와 자연적 나 사이의 균형을 발견했습니다.


칸트 – 질서와 규율의 걸음

칸트는 매일 오후 3시 정확히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의 걷기는 규칙과 습관의 상징이었습니다. 철저히 같은 길을 반복하며 걷는 행위 속에서 그는 인간의 사유가 완전히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규율을 실현했습니다.

가로등 아래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하나에도 규칙을 느끼며, 벤치 하나, 연못 하나, 심지어 같은 나무 아래에서 멈춰 서는 시간조차 일정했습니다. 질서 속에서 마음은 명료해지고, 사유의 폭은 한 걸음씩 확장되었습니다. 규율이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길이 바로 여기 있었습니다.


니체 – 폭발적 사유의 걸음

니체는 산속을 걸으며 글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문장 중 많은 부분이 걸음 속에서 떠오른 생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걷기 속에서 그는 사고를 폭발시키고 창조적 언어를 길어 올렸습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발밑 돌의 울림—모든 감각이 사유의 불꽃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는 말했다.

“위대한 생각은 언제나 걷는 자에게 온다.”

걸음마다, 생각마다, 세계와의 접촉이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순간, 걷기는 단순한 행위에서 사고의 격전장이 됩니다.


세 사람의 걸음 비교

루소: 자유로운 고독 →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

칸트: 질서의 반복 → 규율 속에서 자유를 찾음

니체: 폭발적 창조성 → 걷기 자체가 사고의 불꽃


세 사람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인간은 세계와 연결되고, 사유의 폭을 확장하며, 자신을 발견합니다.



걷기가 주는 사유의 힘

왜 걷기는 사고를 깊게 만드는 걸까요?


리듬과 호흡

걷기의 규칙적인 리듬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을 흐르게 합니다. 일정한 호흡과 발걸음의 반복은 뇌의 신경 연결을 활성화하며, 창의적 사고가 싹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생각의 파동이 되어, 머릿속 복잡한 사건들을 정리합니다.


몸과 세계의 직접적 접촉

자동차나 전철 안에서는 세계가 유리창 너머로 스쳐갑니다. 그러나 걷기는 발바닥으로 땅을 느끼며 세계와 직접 연결됩니다. 바람, 흙냄새, 물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가는 소리—모든 것이 감각 속으로 들어와 사고를 자극합니다. 걷는 동안 우리는 세계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체험’하며 생각합니다.


속도의 해방

현대 사회는 ‘빨리빨리’라는 속도에 지배됩니다. 걷기는 그 속도를 거부하고 인간 본래의 리듬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천천히 걸으면 생각도 천천히, 그러나 깊게 흐릅니다. 속도에서 벗어나면 사유는 외부 압력에서 자유로워지고, 내면과 세계를 다시 맞닿게 합니다. 길 위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 사유의 틈이 생깁니다.



길 위에서 마주한 순간들

며칠 전, 나는 일부러 휴대폰을 집에 두고 동네 뒷산을 올랐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먼 산의 연기 같은 구름, 발밑 자갈의 울림—모든 것이 생생히 펼쳐졌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지난 일과 해야 할 일로 가득했지만, 걷다 보니 발자국 소리와 바람결이 내 마음과 하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길 위에서 나는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흰 수염에 등에는 낡은 배낭, 천천히 걸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그의 모습은 나의 분주한 마음과 달리 세월의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잠시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걸음을 함께 하지 않아도, 길 위에서 사람과 세계가 연결된 순간이었습니다.


‘탁, 탁’ 울리는 내 발자국 소리는 내 마음의 속도와 맞닿았습니다. 생각은 그 리듬 속에서 자유롭게 흐르고, 나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걷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유하는 행위라는 것을. 길 위에서 나는 세계와 연결되었고, 동시에 고독을 마주하며 자신을 회복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사건들—멀리서 뛰노는 강아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떨어지는 낙엽, 갑자기 몰아친 바람—모든 것이 사유의 불씨가 됩니다. 걷기 속에서 우리는 세계를 읽고, 자신을 다시 만납니다.



오늘, 한 걸음의 철학

걷기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의 반복이 모여 길을 이루듯, 짧은 사유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빚어냅니다.


오늘, 당신도 집 근처를 조용히 걸어보세요.

목적지 없이, 단지 두 발로 생각하기 위해.

길 위에서 우리는 잊고 지낸 질문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걷기 속에서 우리는 자유를 얻고, 사유를 얻으며, 자신을 회복합니다. 작은 발걸음이 모여 큰 사유의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 속에서 삶은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존재하는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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