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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무 Jul 13. 2021

골목 끝 담벼락

아빠가 낯설어 보일 때가 있다

회사 가는 길목 버스정류장 앞에 새로운 건물이 생겼다. 그곳에는 원래 낡고 오래된 벽돌로 쌓은 담벼락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연애하던 시절부터 있던 담벼락이었다.

그것이 허물어지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담벼락 뒤에는 담벼락만큼이나 오래된 기와집이 있었다. 담벼락 뒤의, 이제는 새 건물 뒤의 기와집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담벼락은 허물 수 있었지만 기와집은 그럴 수 없었나 보다. 버스정류장과 기와집 사이에 세워진 새 건물은 낡은 골목길을 가리려는 듯 양팔을 벌린 것처럼 얇고 길게 서있었다.


아빠는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담벼락을 힐끔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저 담벼락이 아직도 있네.

미소 뒤의 첫마디는 항상 같았다.

“저 담벼락에 기대서 엄마를 기다렸었는데, 아빠가 군인일 때는 엄마가 저기 서서 아빠를 기다렸고.”

아빠는 운전대를 잡은 손을 짧게, 짧게, 떼었다 다시 잡으며 말을 했다. 운전을 하며 말을 할 때 나오는 아빠의 버릇이었다. 아빠는 말을 다 마친 뒤에도 손을 뗐다 잡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입은 가만있지만 속에서는 이야기들이 멈추지 않는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빠를 보고 있으면 순간 아빠가 낯설어진다. 나는 대꾸 없이 아빠의 표정을 살핀다. 한참 말이 없던 아빠가 짧은 숨을 뱉으며 말한다.

저게 아직도 있네.

담벼락이 있던 곳을 한참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는데도 아빠는 아직도 그곳에 서있다.


아빠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낯설어진다.

아빠의 짧은 숨소리에는 신기함과 뿌듯함 그리고 애틋함,

수십 년간의, 나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아빠는 그 담벼락을 지날 때마다 그렇게 짧게, 짧게, 수십 가지의 감정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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