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은 외할아버지의 별세였다.
주말 저녁,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지하 연습실에서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한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냈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집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울음을 터트렸다.
집으로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엉엉 소리 내서 울면서 옷을 갈아입고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사실 외할아버지와 나는 친분이 없었다.
그저 집안의 어른이셨고 명절 때만 찾아뵙고 인사드리던 게 다였다.
어린 마음에 죽음의 소식을 접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워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비보를 전해받았으니 슬픔에 빠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소식을 전해주는 선생님의 표정이 슬퍼서,
나도 그에 상응하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때는 죽음은 그저 슬픔으로 대해야만 하는 줄 알았고 슬픔의 이유는 알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유독 주변인들의 비보가 많았다.
이미 조문도 여러 번 가보고 조부모님들의 장례도 여러 차례 치른 터라 죽음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졌다 생각했다.
작년 여름,
뉴스 기사로 아는 이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도
장례식장 위치를 묻고 조문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나를 발견했다.
급하게 기차표를 끊고 열차를 기다리다 문득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떠올랐다.
다음을 기약하며 웃으며 인사했는데……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함께 장례식장을 가는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고,
ATM기기를 찾아 현금을 인출하고,
슬픔을 잊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장례식장에 들어서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그의 가족들은 오랜만에 보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반가운 인사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안부를 주고받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반나절 동안 정리할 새도 없이 불어닥친 일들을 받아들이려고 한숨 돌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인이 된 그의 아이들이 ‘엄마-’하며 방에서 나왔다.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자 울음이 왈칵 터졌다.
죽음을 너무 빨리 접해버린 그의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물을 닦고 상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함께 간 일행과 대화도 없이 각자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며 집으로 향했다.
모든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사고로 갑자기 가버린 그의 죽음은 또 한 번 내게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도록 해주었다.
무던히 비보를 받아들일 만큼 강해졌다 생각했는데 무뎌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슬픔에 발을 담그고 있어서 무뎌진 것이고 강해짐은 있을 수 없는 영역이지 않을까.
갑작스러운 이별에 쏟아지는 슬픔은 그 어떤 견고한 마음의 둑도 무너뜨려버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