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히 살면 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게으름이나 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게임판에서
룰을 모른 채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리 성실해도
종종 ‘희생자’라는 결말을 맞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을 안 한다”는 말은
현실을 외면한 기성세대의 신화입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배송 노동, 프리랜서, 자영업, 고시 준비…
각자의 자리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열심을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열심히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입니다.
감정적인 열심, 자기만족적인 열심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뚫어내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는 감정을 보상하지 않습니다.
구조를 읽고, 자산을 설계하고,
위험을 분산하며,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있어야
열심히 결과로 연결됩니다.
자본주의는 자산과 부를 불리는 사람에게 보상합니다.
노동은 중요하지만,
오늘날은 금융 자본주의가 중심입니다.
핵심 구조를 짚어보면:
돈은 노동보다 자산에 더 잘 붙는다
자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로 불어난다
부의 분배는 파레토 법칙(20%가 80%를 가짐)을 따른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정보를 가진 자’를 유리하게 한다
“정직하게 열심히만 살면 언젠가 된다”는 믿음은
이 거대한 구조 앞에서는 너무 순진한 전략입니다.
지금은 물건을 사고파는 전통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돈이 돈을 낳는 금융 자본주의의 시대입니다.
부동산, 주식, 채권, ETF, 암호화폐, 연금 시스템…
이 모든 것이 게임판입니다.
이 게임판에서 자산을 어떻게 배분할지,
얼마나 길게 바라볼지가 승패를 가릅니다.
단기적인 성과나 감정적 만족에 머물면,
결국 ‘열심히 사는데 가난한 사람’이 됩니다.
축적된 자본이 없다면
노동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축적해야 하며
그 축적의 시간 동안 자본증식에 대해서 공부하고
축적과 증식이라는 두 바퀴로 그 자본을
굴려야 합니다.
우리는 ‘착한 사람’, ‘선한 영향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착함과 선함이 금융 구조와 연결되지 않으면
그 힘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부분이 전체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부분은 전체 구조의 제약을 받습니다.
따라서, 전체 구조를 고려한 부분으로서의 활동이 되어야 착함이 지속성을 얻습니다.
결핍을 느끼면 여유는 못느낍니다.
여유 속에서 부드러움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선한 의도로 기부와 봉사를 해도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자신의 자산이 고갈된다면
그 선함은 오래 이어질 수 없습니다.
선한 영향력도 재정적 기반 위에서만
지속가능하게 확장됩니다.
열심히 사는 건 기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이해하며, 어디를 향해 열심히 사느냐입니다.
자본주의는
감정적 열심보다 구조적 이해에 더 큰 보상을 줍니다.
착함과 선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구조를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을 투자자이자 영향력자로 세울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선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