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간힘-유병록(하)
유병록 산문집 「안간힘」에서 각각의 산문은 소설처럼 이어진다. 자식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되는 글은 그 이후의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아들의 죽음에 이은 작가의 감정 변화는 기승전결을 이루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결말짓는다. 격앙된 감정이 수그러졌다가 다시 갈등을 겪고, 마침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차분하게 묘사되어 있다.
만약 작가가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면 처음에 책을 접했을 때, 바로 덮고 싶었던 마음이 다시 발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글픔과 함께하는 일상과 그 속에서 얻는 깨달음을 무던하고도 진솔하게 그려놓았기에 작가의 심경 변화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 졌다. 작가가 순간순간 어떻게 감정을 추슬렀는지, 어떤 계기가 새로운 마음을 먹게 했는지, 상실에 대한 고통을 어떻게 승화시켰는지 궁금했고 이에 대한 해답을 얻는 느낌으로 책을 대하게 되었다.
나 또한 살아 있다는 것이 치욕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존재가 죄가 된 듯한 시간들. 사는 걸 멈추면 가족에게 더 큰 수치를 안길 것 같아 슬픔을 가슴에 눌러 담고 살았다. 이 책을 펼치는 것이 두려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까 봐 읽기를 주저했다.
한 지붕 아래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아이들에 대한 남편의 폭력, 그 사실을 몇 년간 숨기고 살아온 아이들. 그리고 큰아이의 용기로 터졌던 비밀. 나는 당장 지옥에라도 가고 싶었지만, 치욕을 감당하고 살아야 했다. 그 이후, 행복을 느끼면 “이럴 자격이 있나” 스스로 질타하고, 불행이 오면 “천벌을 받아도 싸다”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부끄러워 나보다 더 아팠을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세상이 나만 학대하는 것 같아 원망했다. 결국 역병을 퍼뜨리는 죄인이 된 양 사람들을 피해 다녔고, 나 자신을 더 미워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외할머니와 살기를 원해,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연명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마 죽지 못하고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만 버티자고, 그때까지만 숨 쉬자고 몇 번을 다짐했다. 나쁜 생각들을 박제해서 깊이 묻어두었는데, 10여 년이 지나도 한 번씩 파닥대어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었다. 그래서 슬픈 것들을 애써 피했다.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시인 유병록은 피하지 않았다. 나와 다르게 심장이 멎을 듯한 슬픔을 기억했고, 견뎠고, 품었다. 나는 그를 통해 묻게 되었다. 나도 작가처럼 안간힘을 썼다면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가족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덜 괴롭고, 열등감에 젖어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지 않고, 조금은 덜 아픈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그를 보며 깨달았다. 슬픔은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비로소 조금씩 옅어진다는 것.
「안간힘」을 읽고 나는 가족에게라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슬픔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나도 살아내고 있으니 당신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핥아주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면…. 한 사람에게라도 그런 울림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