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탁탁!

by 슴도치
점심시간은 12시~1시입니다


남자는 또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중절모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든 그는 다시 거짓말을 지껄였다. 그에게 그 중절모만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남자는 또다시 쉬지 않고 체납이며 과태료며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정성을 다해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책상에 놓인 서류 뭉치를 정리하는 척했다. 두 손에 두꺼운 서류를 들고 책상 바닥에 탁탁! 그 거짓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쉼표 하나까지 외울 지경이었다.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자니 과연,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책상 위에 ‘식사시간’이라는 푯말을 올려두었다. 그랬더니 그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바라보곤 중절모를 쓰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실 식사 시간이라는 푯말은 내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오전 9시 30분, 아주 멀쩡한 아침이었다. 나는 다시 서류뭉치 정리를 시작했다. 두 손에 두꺼운 서류를 들고 책상 바닥에 탁탁! 하루 종일 내가 하는 일이라곤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주 대단한 일을 하는 양 바쁜 척을 했다. 갑자기 문이 탁탁! 열리더니 옆 자리의 사무관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그는 다급히 수화기 붙들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 사람이 죽었어요! 그는 중절모를 쓴 남자가 화장실에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나는 사무관에게 이봐요, 그 남자는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무관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직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면 나는 그 사무관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죽은 남자가 죽은 척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거짓말 속에 있는 건지 완전히 헷갈리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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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반복해서 듣는 무력감

최근 반복되는 거짓말에 지쳐있다. 기회를 주고 다시 주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될까? 손절이 답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 믿음과 불신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믿음을 택하고 싶다. 왜냐하면 불신은 아무래도 의심이라는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 싶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꾸 불신을 주는 상대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시에서 남자가 반복해서 늘어놓는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주인공은 이미 그 말의 쉼표 하나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지쳐 있다. 이 지점에서 주인공은 ‘말’ 자체에 대한 혐오를 느끼기 시작한다. 나 또한 그렇다. 말에 무슨 힘이 있을까. 믿음은 말에서 오지 않는다. 믿음은 전적으로 행동에서 기인한다. 행동이 없는 말은 깃털 같은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날게 할 수 없다.



진실과 허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정체성


마지막 장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조차 주인공은 남자가 진짜 죽었는지, 거짓말인지, 아니면 자신이 상상 속에 있는지 헷갈린다. 이건 ‘너무 많은 거짓’이 결국 나의 현실을 파괴했다는 선언인 것이다. 주인공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대단한 일을 하는 양 남자의 말을 듣지 않은 척했지만 그 거짓의 가장 현혹된 사람은 주인공이었다. 반복된 거짓은 결국 진실이 된다. 하지만 그 거짓이 진실이 아니라는 건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알고 있다. 거짓의 피로도는 그 부분에서 온다. 거짓말이 나쁜 이유는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 모두 우스워진다는데 있고,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겨우 잘 꾸며놓은 모델하우스 같은 것 밖에 안된다. 그럴듯해도 보여도 거기서는 아무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허무함


거짓을 알고 있는 것과 입 밖으로 뱉어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것은 머릿속에 아무 의미 없는 일을 의미 있는 일처럼 꾸며내는 일이다. 지레 겁을 집어먹고 거짓을 지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관계에 있어 신뢰는 신분증 같은 거고, 아무래도 신분증이 없는 사람은 의심스럽기 마련이다. 하루 종일 ‘서류를 탁탁!’ 정리하는 일상, 아침임에도 ‘식사시간’이라 푯말을 올리는 사소한 위선, 죽은 사람의 생사조차 의심하게 되는 상황은 주인공과 남자의 존재를 한없이 가벼워 보이게 만든다. 진실을 말한다는 건 분명 용기 있는 행위다. 그것이 사소하거나 무거운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거짓을 말했을 때, 그 거짓을 스스로 인정하고 자책하고 상대에게 진실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인 것이다. 살다 보면 늘 솔직할 수만은 없다. 때로 거짓은 훌륭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상대를 기만하는 거짓은 결국 부메랑 같은 게 되어버린다. 나는 용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겁한 사람도 아니고 싶다. 살다 보면 거짓말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 거짓이 당신을 아프게 하는 거짓이라면 차라리 진실을 말하고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


오늘 아침, 눈곱 낀 당신에게 이쁘다고 말한 것. 그리고 당신이 거짓말하지 말라며 웃고 돌아설 때도 내게는 늘 진실이었다. 어쩌면 그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가볍지도 허무하지도 않을 유일한 시간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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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