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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Oct 27. 2021

완벽한 인생 #7

불운은 고속도로를 타고

내가 먹고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반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특이한 열대 과일을 파는 일은 일종의 틈새시장이었고 그래서 경쟁자가 거의 없는 독점적 분야였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들끼리만 알음알음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을 짭짤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경쟁자들이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점점 더 싼 가격에 팔아야 했다. 물론 여전히 기존의 단골들이 있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경쟁에서 밀려 큰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계획한 모든 일을 망치게 된다. 나는 이미 결혼하고 싶은 사람도 생겼고, 기존의 삶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었다.


그런데 이 틈새사업에 대해서 최초에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익명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세세하게 정보를 올렸고, 결국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내 사업의 불운과 아내의 마음을 교환하려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나의 조심스러운 접근에도 늘 차갑게 굴던 아내에게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틈이 생겨난 것이다. 그 틈은 바로 아내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딸만 둘이었던 집안의 장녀였던 아내는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몹시 당황했다. 놀람과 슬픔도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매우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지만, 나에겐 아내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그 당시 아예 가게 문을 닫아 버리고는 장례식장을 예약하는 일부터 이후 절차까지, 그리고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장지까지 모시는, 그 모든 과정을 함께 아내와 함께 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놀람과 슬픔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내는 나의 도움에 힘입어 장녀로서의 몫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절차가 끝나는 마지막 지점, 장지에 아버지의 뼈를 뿌리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는 아내는 내 옆자리에 앉아 내 어깨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졌다. 그 후 일 년쯤 지나서 우리는 결혼했다.


경쟁자의 출현으로 인해 몇 년 간 사업이 많이 어려워지긴 했다. 하지만 나는 죽기 살기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썼고 그 결과 오히려 예전보다 좀 더 단단하게 바닥을 다질 수 있었다. 경쟁자도 많이 늘었지만 그로 인해서 시장 자체도 커진 장점도 있었다. 덕분에 순 이익률은 많이 낮아졌지만 매출이 많이 늘어서 오히려 수입 자체는 늘었다. 더 많은 시간을 일을 해야 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너무도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다. 단지 가족이 생기니 좀 곤란한 문제가 생겨났다.


이제 더 이상 몸이 더 이상 내 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혼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뒤통수가 깨지고, 교통사고를 당하고, 집에 불이 나도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믿고 함께 하는 가족들이 있다. 나는 나에게 운에 관한 진실을 알려 준 고객처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방법들이었다. 조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능하다면 내 몸이 상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불운이 일어나야 했다. 도대체 어떤 일이 그런 종류의 불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나마 소소한 불운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말로 재미없는 영화를 보거나, 맛없기로 소문난 집에서 가서 음식을 먹거나, 사람이 미어터질 것이 분명한 시기에 관광지를 가거나, 추돌 사고가 나서 막힐 것이 분명한 도로를 선택하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 물 웅덩이가 깊게 팬 도로 근처에 서 있다가 물벼락을 맞는 일은 쉬웠다. 하지만 행운과 불운의 대칭성 원리에 따라서 그런 불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운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특히나 일부로 불운을 일으켜서까지 얻고자 하는 행운들은 결코 얻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한 동안 그런 커다란 행운이 필요로 한 경우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느 다른 집들처럼 이런저런 문제들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을 뒤흔들 만큼 심각한 문제들은 생겨나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아내가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식욕도 줄고 살도 빠졌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니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다. 난소암이었다. 행운을 얻기 위해서는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불운들은 마치 뻥 뚫린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듯 그렇게 찾아왔다. 물론 이런 불운이 또 다른 어떤 행운으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아내를 잃고 얻을 수 있는 행운이라면 나는 결코 그것을 얻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치료 가능성에 대해서 희망적으로 말했지만, 내가 찾아본 사례들을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못했다. 물론 병원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는 갔다. 정말로 기적적으로 암을 이겨낼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치료 과정이 쉽지도 않았고, 사는 것이 사는 것도 아니었다. 직업이 간호사였던 아내는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 했다. 남은 삶을 좀 더 나은 곳에서 나와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어 했다.



아내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털이 다 빠지고 삐쩍 메마른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의 조그만 집을 한 채 구했다. 주변에 따로 인가도 없어서 조용하고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환경이 좋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내를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불운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시골집은 아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 그것을 적당히 포장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물론 아내도 시골집 삶을 원하긴 했다.


하지만 불운을 일으키는 일 자체는 몹시 막막한 상황이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니 그 목숨에 상응하는 수준의 불운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그랬다. 아내를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아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목숨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내에게 있어서 나나 내 아이들의 목숨은 그녀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러니 설령 아내의 병이 치료가 되더라도 내가 없는 상황이 되면 아내의 삶은 무너지게 된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어야 우리 가족에게 별 다른 피해가 없으면서도 큰 불운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다.


나는 불륜 카페에 가입했다. 거기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남편들로 인해 외로움을 겪고 있는 여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여자를 만났다. 좋은 여자였다. 만약 지금의 아내와 인연이 없었다면 같이 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충동적으로 불륜 카페에 가입했었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처지라고 거짓말을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빠르게 사랑에 빠져 들어갔다. 불륜관계라는 사실은 우리의 사랑을 더욱더 안타깝고 애타게 만들었다. 남편의 눈을 피해 나와야 하는 그녀와 어쩔 수 없이 아픈 아내를 속이며 나와야 하는 내 처지가 남몰래 만날 때마다 서로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당신 얘기는, 아픈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 살인을 교사했다는 거죠?" 내 눈앞에 있는, 자신을 김형석이라고 밝힌 눈이 부리부리한 형사는 내 말을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비아냥댔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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