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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찬우 Nov 04. 2021

완벽한 인생 #10

기울어진 운동장

“사실 그 답은 참 단순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인간이 원래 그래요. 아니, 생명체가 그렇다고 해야겠죠. 생명을 가진 존재는 살고 있거나 죽어 있는 두 가지 상태를 가질 수 있는데, 가만히 있으면 무조건 죽음으로 향하게 되죠. 쉽게 말해서 우리의 삶은 늘 죽음 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습니다. 그러니 매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야만 겨우 중간 지점에 머무를 수 있죠. 뭐, 그 노력이 잘되면 행복해질 수도 있고요.”


내 설명에 조형사는 이제 살짝 이해가 가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사실 어려운 설명도 아니다. 삶은 원래 행복이 아닌 불행이 본질이다. 그래서 끝없이 노력해야만 겨우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거기에 운이 따르면 행복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자, 그러니 설령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같더라도 이 본질적 문제로 인해서 아주 곤란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행운과 불운이 찾아오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서 그렇죠.”


“찾아오는 방식이요?”


“네, 찾아오는 방식이요. 삶의 본질이 불행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행운이 찾아올 때는 아주 힘듭니다. 바닥에 붙어서 굴러오려면 많이 힘들죠. 그래서 허공에 둥둥 떠 와요. 그렇게 해야 기울진 바닥에 영향을 덜 받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 행운을 잡기 위해서는 뛰어야 한다는 점 때문이죠. 가만히 있으면 행운은 그냥 허공에 떠다니다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니 각자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높이로 뛰어야만 다가오는 행운을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반대로 불운은 자신감이 넘칩니다. 그냥 바닥으로 굴러오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 마음껏 옵니다. 그러니 넋 놓고 가만히 있다가는 어디선가 굴러온 불운에 자신도 모르게 치게 됩니다. 그러니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불운을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죠. 심지어 허공에 떠 있는 행운을 잡으려고 자주 뛰어오르는 사람들일수록 더욱더 실수로 자주 불운에 치게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마다 똑같은 행운과 불운이 찾아오지만 어떤 사람은 신중하게 불행은 잘 피하고 허공을 떠다니는 행운은 적절한 타이밍에 뛰어서 붙잡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행운만 보고 뛰다가 수많은 불운을 밟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운을 피하는데 바빠서 행운을 향해 뛰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살아가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엔 인생의 초반에 너무도 큰 불운에 치여 넘어져서 그 후로는 불운은 전혀 피하지 못한 채 행운을 향해 뛸 엄두도 못 내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비록 각자의 삶에 도착하는 행운과 불행의 총량은 똑같아도 결국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 이유입니다.”


"조형사, 이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해?" 옆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듣고 있던 김형사가 결국 짜증을 냈다. 그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 조형사를 나무랐다. 이미 내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김형사에게는 내가 하는 말은 다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조형사는 달랐다. 그는 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둘은 잠시 옥신각신하더니 김형사는 딱 삼십 분 주겠다고 하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취조실엔 나와 조형사 둘만 남게 되었다.


"계속 얘기해 보세요." 김형사가 나가면서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조형사가 나를 재촉했다.


"뭐, 복잡한 얘기는 아닙니다. 행복하기 살고 싶다면 늘 주의 깊게 바닥에 깔려오는 불운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허공에 떠도는 행운을 잘 붙잡을 방법을 생각해야 하죠. 그러면서도 행운을 붙잡으려다가 오히려 불운을 더 밟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그때부터 행운과 불운의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삶은 행복과 불행이 적당히 균형을 맞춘 것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불행의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형사는 내가 방금 한 말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다.


"말이 쉽지, 그게 쉬운 일인가요? 처음부터 어떤 일이 행운인지 불운이 지조차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조형사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반드시 얻어야 하는 행운이 있다면 그에 따른 불운을 억지로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이죠." 이후 나는 아직 말하지 않았던, 오래전 과거에 내가 처음 고객의 황당한 의뢰를 받았던 일부터 시작해서 이후 십 수년간에 걸쳐 내가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조형사에게 말했다.


"놀라운 이야기군요. 솔직히 말해서 믿기도 그렇고, 믿지 않기도 그렇고, 애매하네요." 나의 긴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조형사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워했다. 그의 그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는 갔다. 나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저 아주 예전에 고객으로부터 운에 관한 설명을 듣고 로또 당첨이 된 후부터 내 확신은 점점 더 확실해져 왔을 뿐이다. 물론 이 순간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조형사가 내 말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은 없다. 나는 단지 지금 나를 기소할 조서를 작성 중인 경찰에게 나에 대한 호감을 심어줄 목적만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공감할수록 그가 쓸 조서의 어투는 내게 유리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그것만이 지금의 내가 뛰어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남은 김형사로 인해서 그것도 그리 희망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1심에서 15년 형을 언도받았다. 2억을 합의금으로 내놓고 받은 어느 정도의 양형이었다. 많은 돈을 들여 변호사를 구했더니 다행히 앞의 두 건의 사고가 많이 가중처벌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가중처벌을 받았다면 나는 최소 무기징역형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그동안 벌어 놓은 많은 돈 덕분에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다. 1심이 끝난 후 항소를 포기했다. 변호사는 무조건 2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나는 너무 지쳤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았더라도 나는 결국 세 명의 목숨을 뺏은 살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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