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새에 잠에 들었다. 이는 기차 내에 울려 퍼지는 논산역에 도착했다는 방송 덕분에 알게 되었다. 논산에는 눈이 아주 많이 쌓여 있었다. 기차역을 빠져나와 한동안은 정처 없이 걸었다. 조용한 동네는 마치, 어렸을 적 처음 방문했던 놀이공원의 화려함과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곳은 현재,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예스러움이 가득했다. 본디부터 걷는 것을 종아 했지만, 오래간만에 만난 낯설면서도 정에 겨운 풍경엔 속수무책이다. 예상보다 한 시간 이상은 더 걸었다. 마치 좋은 영화에 몰입했던 것처럼 깊게 빨려 들어갔다 나왔다. 그 순간 손과 발이 너무 시리다는 것을 깨닫고서 쉴 곳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근처에 보이는 여관이나 모텔 호텔들이 영업을 안 하는지 간판이 다 꺼져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문해 보기로 한다. 가장 가까운 여관에 도착하여 1층에 위치한 안내 데스크 앞에 선다. 인기척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작은 소리로 “저기요.”라고 외친다. 아무 대답이 없다. 조금 더 큰 소리로 “사장님.”하고 외친다.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다. 곧바로 가까운 모텔로 향한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한눈에 보아도 폐업한 건물인 것을 알 수 있다. 휴대폰도 없는 것에 큰 불편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다시 길을 나선다.
그렇게 삼십 여 분쯤 걸었을까? 식당이 눈에 하나 띄었다. 우선은 얼어붙은 몸과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당연히 노부부가 운영하는 가게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젊은 부부가 있었다. 모델처럼 키가 크고 인물이 좋은 남자와 작고 아담한 토끼같이 생긴 여자였다. 남자는 우렁차게 인사를 해주었고 여자는 침착하게 물과 컵을 가져다주었다. 티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그들도 젊은 남자 혼자 큰 배낭을 메고 들어온 것이 조금 낯설어 보이는 눈치였다. 눈치를 좀 살핀 뒤 메뉴를 둘러보니 돼지고기 김치찜과 계란말이, 감자전 이렇게 세 가지 메뉴만 적혀 있었다. 김치찜은 1인분도 주문이 가능하였고 밥에 말아 나오는 방식과 밥이 따로 나오는 방식으로 두 가지였다. 나는 밥을 따로 달라고 요청한 뒤 메모장을 꺼냈다.
‘2023년 1월 28일 논산역에서 도보로 대략 두 시간 떨어진 식당에 도착.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12분. 시간은 이제야 알았다.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아 저녁때가 된 것이라 여겼지만, 정말 저녁때가 되었을 줄이야.
'낯선 장소,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첫 식사.’
대충 기록해 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헤어진 그녀가 또 잠시 스쳐갔고, 집을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온 동안 집 정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럴 것을 대비하여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왔다면 그나마 마음이 편했을 텐데. 나는 매번 그랬다. 답답함이 차 오를 때면 집을 방치하고 현실을 도피했다. 나는 답답함에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려고 밖으로 나왔다. 이 시골의 풍경은 나와 다르게 참 여유로워 보였다. 부러웠다. 물론, 이곳의 생활도 별 반 다를 것 없는 사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눈엔 한 없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상적인 세상 같아 보였다. 겨울이 한창일 때 포근한 새벽을 느끼고 겨울바람이 만성일 때 따뜻한 햇살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세상. 나는 그렇게 또 잠시동안 흰 눈에 시선을 뺏겼다. 그리고 곧 코를 찌르는 김치냄새에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음식이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쌀밥과 김치찜 그리고 계란말이 2조각도 함께 있었다. 나는 사장님께 계란말이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계산할 때에 잘 먹었다고 말씀드리고자 마음먹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첫 술에는 자작한 국물을 조심스럽게 떠서 입에 넣었다. 이상하게 텁텁함이 없고 맑은 국물이었다. 보통의 김치찜은 진하고 고춧가루 맛이 많이 났던 것 같은데 반대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곤 김치를 하나 찢어내어 고기에 감싼 뒤 한 입 했다. 김치는 약간의 식감이 남아있었고 고기는 정말 녹아내렸다. 흰쌀밥은 국물에 적셔 먹었다. 조금의 찰기와 윤기가 있는 흰쌀밥. 맛있었다. 나는 원래 식사를 빠르게 하는 습관이 있지만, 느리고 조용히 식사를 이어 나갔다. 이유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분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급하게 먹는다면 체할 것 같았다. 나는 식사가 끝나갈 즈음 조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계란말이를 잘 먹었다는 인사말도 건네야 했고 또 근처에 묵을 곳이 있는지도 물어봐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계산대로 향했고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잘 먹었습니다. 계란말이도 감사합니다.”
남자 사장이 대답했다.
“아우, 예 제가 더 감사합니다. 그런데 배낭이 큰 것을 보니, 여행 중인 가봐요?”
“아, 네. 논산에서 조금 머물고 싶은데 근처 숙소를 찾기가 힘드네요.”
“이 근방은 재개발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근처에 에어비앤비가 몇 군데 있어서 휴대폰으로 금방 찾을 수 있을 건데?”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이방인. 그리고 휴대폰까지 없다고 얘기하기엔 너무 수상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여자 사장이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묵을 곳을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남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한 달 정도 머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내 대답에 곧바로 그 둘은 직업이 안내자인 것 마냥 나를 안내해 주었다. 마치 그들의 업인 것처럼. 가게를 두고 다녀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근방이라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들을 뒤따라 가며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약속 아래에,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아름다운 한 쌍이 아닐 수가 없었다.
도보로 오분 정도 걸었을까? 지어 진지 족히 이십여 년은 되어 보이는 빌라 한 채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말하길, 3층 집을 시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였다. 세를 놓기 위해 최소한의 가전을 가져다 두었고 리모델링을 해 두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곧 입주민을 받을 계획이었다고도 얘기했다. 하지만 식당을 물려받은 시기와 맞물려서 방치해 두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종종 방문하여 보일러 작동도 시켜 놓았으며 동파 방지를 위해 수도를 열어 두기도 하였기에 지내는데 문제없을 거라며 조금은 상기된 것 같은 어투로 내게 전하며 당장은 계획에 없었기도 하였고 덕분에 한 달을 채울 수 있었으니 기존 월세의 반 만 받겠다고 까지 이야기하였다. 나는 몇 차례 동안 정중하게 거절하였지만 남자 사장은 귀를 막고 “이제 식당에 돌아가야 해요!”라는 멀어지는 말을 남기고 떠났고, 남은 여자 사장은 메모지에 두 개의 휴대폰 번호를 남기면서 “전에 사용하던 낡은 전화기가 있으니 필요하면 사용하세요.”라는 말과 옅은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신발장에 그대로 우두커니 선 다음 정면에 있는 작은 베란다를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던 중 문득, 이곳이 채움과 텅 빈 것이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채워져 있는 공간과 텅 빈 나. 둘의 공존 관계는 명확해 보이면서 흐려 보이기도 했다.
안방에서 몇 안 되는 짐을 하나씩 정리했다. 걸어야 할 옷 들은 옷걸이에 걸었고, 접어 두어야 할 옷 들은 단정하게 접은 뒤 수납장에 넣어 두었다. 그다음은 네 권의 책과 노트 한 권 그리고 연필 한 자루와 연필깎이와 손톱깎이를 꺼내어 화장대에 올려 두었다. 정리를 마친 뒤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논산에 와있고 운 좋게 방도 구했으며 한 달 정도를 머물 것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우려가 된다며 며칠만 지내다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신다. 나는 조금은 날이 섞인 말투로 “엄마, 그냥 걱정하지 마.”라고 하였고 엄만 걱정 섞인 목소리로 “알겠어.”하며 답한다. 전화를 끊고 팔에 힘을 꽉 준 뒤 손바닥으로 뒤통수를 몇 차례 내리친다.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은혜 대신, 날이 선 말투로 가슴에 못을 박는다. … 후회되는 선택은 하기가 쉽다. 나는 곧바로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랬기에 다시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적었다.
‘우리가 만난 1년의 시간. 우리가 이별한 2년의 시간. 내가 널 사랑한 3년의 시간.’
그렇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 2년을 더 사랑했다.(어쩌면 아직 진행 중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내게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이별 뒤에 느껴지는 미세한 변화들이 더 신경이 쓰였다. 왜 그런 것인가 하니‘사랑’의 화살이 연인의 과녁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사랑, 세상과 사물에 대한 사랑과는 멀어져 있었다. 사실 짝사랑의 시간 동안 많이 아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진정한 사랑에서의 배움은 끝이 없었다. 예컨대, 멀어졌던 사랑과의 조우. 나는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뒤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경험 속에 있던 고통의 터널은 그 끝을 알 수가 없었고 저 멀리서 아주 작은 빛조차 들어오는 일 없었다. 술과 담배에 절여진 몸은 겨우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는 것에 더 큰 장애를 가져다주었다. 하루에 자아가 붕괴되는 횟수를 세어보자면 열 손가락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었다. 그 덕에 현재 여행길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고요함에 눈을 떴다. 분명히 아주 잠시 몸을 눕히었다가 젊은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러 가야지 했었다. 우선 몸을 조금 힘들게 일으켜 세웠다. 보일러가 작동이 원활한 덕인지 한기를 크게 느끼지 못하였다. 세면도구를 챙겨 화장실에 입장하는 순간 다시금 겨울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씻는 것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이 느껴지만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난 뒤 온수에서 벗어난 몸은 추위를 더욱 잘 느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잘 마른 수건과 헤어드라이어가 수납장에 비치되어 있었기에 몸을 잘 말릴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뒤 벽시계를 보니 시간은 7시 30분. 현재 나에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이른 시간이라고도 생각했지만 동네를 둘러볼 겸 밖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