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가운데 이불이 펼쳐져 있다. 방에 모인 사람들은 이불에 손이며 다리를 넣었다. 아이는 이불 아래에 숨어 있었다. 아이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선 여러 목소리 중에 흐릿하지만 잊을 수 없었던 여자의 목소리를 찾는다. “숙아, 엄마 왔잖아. 나와봐.” 세 살 때 이 집에 맡겨진 아이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아이는 한참 동안 이불 속에 있었다.
이불 속의 아이는 평생 그녀를 따라다녔다. 아이는 엄마 없이 자랐다. 그녀는 자신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죽은 언니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증을 만든다.
그녀는 이름이 세 개다. 어린 시절엔 혜숙이라 불렸고, 주민등록증에는 묘순이라 적혔다. 그녀는 오십이 넘어 스스로를 은주라 이름 짓고 주민등록증의 이름을 바꿨다. 그녀는 은주라는 이름이 내 이름과 비슷해서 좋았다고 했다.
그녀는 스무 살 때 남자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삼 년 뒤 나는 어린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엄마는 햇볕이 좋은 날이면 철 수세미로 쇠그릇을 닦아 햇볕에 말렸다. 또 수건과 걸레를 삶았다. 세탁비누 냄새가 골목까지 퍼졌다. 오빠와 나는 수저로 감자 껍질을 벗겼다. 감자와 호박을 넣어 수제비를 끓였다. 많이 끓여서 주인집에 갖다주었다.
주인집이 된 엄마는 마당에 식물을 키웠다. 십자매와 잉꼬를 키웠고, 큰 어항에 물고기를 키웠다. 또 어디선가 개를 데려와 키웠다. 개는 몇 년을 못가 없어졌고, 없어지면 또 데려왔다. 엄마는 음식을 많이 했고 이집 저집 갖다주었다. 엄마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은 엄마의 요리 솜씨가 좋다고 했다.
엄마는 가끔 풍선껌을 사서 우리에게 두 개씩 나누어 주었다. 내가 누우면 엄마는 내 허리를 베고, 엄마의 다리는 오빠가 베고 누웠다. 우리는 풍선껌을 씹고 또 크게 불었다. 우리는 함께 고스톱을 치고 윷놀이를 했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그때마다 엄마는 웃었다.
그리고 가끔 우리를 때렸다. 대부분 오빠와 함께 매를 맞았지만, 나만 맞기도 했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고, 화를 냈다. 매로 때리는 날도, 옷걸이로 때리는 날도 있었다. 엄마는 자주 울었고, 나는 자는 척을 했다. 나는 엄마가 언제 웃을지 울지 몰라 이불속에 가만히 웅크렸다.
이제 엄마가 된 나는 그 이불을 걷어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