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들의 휴식처에서 동네 사랑방,퍼블릭하우스PUB
마차를 탄 여행자들의 휴식처에서 펍으로 남기까지.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시기, 유럽에는 마차를 탄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었다.
코칭인 Coaching inn, 코칭하우스Coaching House, 스테이징 인 Staging inn 등으로 불렸던, 이 숙소는 약 11킬로미터마다 위치했다. 당시 이 숙소들은 마을의 기반시설이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10개나 운영되기도 했다. 여행자뿐 아니라 말도 쉬게 하는 시설이었고 우편배달부들은 업무 중 지친 말을 갈아타는 역참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업장에 따라 말 관리인이 따로 있기도 했다.
앞서 말했듯, 숙박과 함께 식사를 판매했는데 1800년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말 대신 기차가 주요 이동수단이 되자 숙박의 기능을 상실한 많은 여관이 펍 Pub만 운영하게 되었다. 역사가 깊은 펍들은 런던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그레이트 노스 로드에 주로 위치한다. 이 길이 당시 런던에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까지 연결된 유일한 도로였기 때문이다. 이 길의 시작점인 런던에는 아직도 몇 곳의 코칭인이 남아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조지 인 The George Inn이다. 중세시대에 지어졌으며 1543년의 런던 지도에 표기만 되어 있을 뿐 정확한 설립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최소 500년은 넘은 곳이다. 객실이었던 2층은 현재 갤러리로 사용하며 1층은 펍으로 운영 중이다. 그레이트 노스 로드 옆으로 영국의 메인 고속도로인 A1 도로가 개발되어 현재는 국도로만 찾아 들어갈 수 있다.
영국을 다니는 동안 수많은 펍을 봤다. 런던의 펍은 지나칠 때마다 왁자지껄 시끄러워서 으레 술집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만난 펍에는 건물 외벽에 Pub&Inn으로 숙박 시설 표시가 함께 붙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여관의 기능은 안 하는 듯, 낮에는 건물의 불이 꺼진 채 닫혀 있었고 1층의 창문 사이로 식당처럼 테이블이 있는 공간만 보였다. 그래서 영국에 처음 갔을 때 나는 영국의 시골에서 Pub과 Inn이 같은 의미로 쓰이는 줄 알았다. 저녁이 되면 숙박 시설인 듯 보이는 건물 위층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아래층은 왁자지껄한 술집이었으니까. 술을 못 마시는 나는 여행 내내 펍에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그곳의 정체성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영국에서 유학했던 친구의 제안으로 시골의 한적한 펍에 들어가게 됐고, 그제야 그곳이 내가 생각한 술을 파는 호프집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Pub’은 Public House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공공의 공간’을 의미한다. 실제로 펍은 끼니때에는 식사를 파는 식당이었고, 그 전후 시간대에는 커피나 차를 파는 카페가 되었으며, 늦은 밤에는 맥주와 안주를 파는 술집이 되었다. 낮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오는 동네 사랑방이었다가, 저녁에는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였다가, 때로는 인근 고등학교에서 펍 앞에 천막을 쳐놓고 파티를 즐기는 장소이기도 했다. 달걀프라이, 베이크드 빈, 블랙 푸딩(곡물에 돼지 피를 넣어 만든 소시지, 우리나라의 순대와 비슷하다.) 등으로 구성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곳, 동네 맛집 등 수많은 수식어가 ‘펍’에 따라붙곤 했다.
1800년대 중반 철도의 개발로 코칭인을 운영하던 주인들은 말의 쉼터를 없애고 여관과 펍만 운영했고 종국에는 펍의 기능만 남기게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술을 파는 영국의 펍은 원래 허가를 받고 맥주 ale, 사과주 cider 등의 주류를 팔 수 있는 가게였다. 맥주를 제조해 판매한 것은 5세기 즈음인데 965년 에드거 왕은 술을 파는 에일 하우스 alehouse가 너무 많이 번성하자 “마을마다 에일 하우스를 한 곳만 두라.”라고 지시할 정도였단다. 1577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전체에 1만 4,202 곳의 에일 하우스가 있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중세에도 숙박 시설과 연관 없이 펍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마차들의 숙소가 펍으로 변형되어 더 많은 펍이 곳곳에 남게 되었다. 시골로 여행할수록 숙박 시설과 함께한 펍이 많이 보였고 그리고 여전히 몇 곳은 운영하는 흔적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