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Stilton cheese
야렉은 먼저 커다란 양동이에 물 8리터를 채운 후 여기에 식물성 레닛 750밀리리터를 넣었다. 이 희석시킨 레닛을 우유에 부어 넣곤 재빨리 젓기 시작했다.
“레닛을 넣으면 응고 반응이 바로 시작되니 짧은 시간 안에 우유 속을 골고루 저어야 해요. 섞는 시간은 단 2분이에요.”
야렉은 긴 막대기를 든 채 길이가 10미터나 되는 베트를 구석구석 꼼꼼히 휘저으며 두 바퀴를 돌았다.
“이제 좀 쉴까요? 아침 먹으러 가요.”
이틀째부터는 나도 다른 이들처럼 새벽에 출근해 오후에 퇴근하는 일정을 같이했다. 익숙하지 않은 노동에 금세 지쳐 우유가 응고되는 동안의 휴식시간을 누구보다도 기다렸다. 처음엔 아침을 먹자고 하기에 구내식당이라도 있는 줄 알았건만, 전혀 아니었다. 작지 않은 회사 규모에 비하면 야박하게도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은 휴게실이라 불리는 작은 공간뿐이었다. 그곳에 있는 건 테이블 몇 개와 물을 끓일 수 있는 전기 주전자, 홍차 티백, 차가운 우유만 들어 있는 냉장고가 다였다. 영국이라 어딜 가든 풍족한 건 홍차였는데 쉬는 시간에 사람들은 홍차에 우유를 약간 섞은 밀크티 한 잔에 집에서 챙겨 온 퍽퍽한 샌드위치를 먹곤 했다. 크롭웰비숍은 워낙 외진 작은 마을에 있어서 근처에 식당 하나 찾기가 어려웠고 아무것도 모른 채 빈손으로 갔던 첫날은 물로 하루를 연명하다 거의 기절 직전에야 호스텔로 돌아왔다.
우유가 응고되기까지 2시간이 걸려 아침 9시가 되자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야렉은 베트 앞에 서서 응고된 우유에 손등을 살짝 댔다가 떼며 말했다.
“해볼래요? 손을 뒤집어서 손등을 우유에 살짝 대봐요. 우유 덩어리들이 묻어나지 않으면 잘 응고된 거예요.”
손등에 살짝 닿은 응고된 우유는 찰랑거리는 푸딩 같았는데, 이렇게 응고된 우유를 커드 curd라고 한다. 커드에서 맑은 우유물만 묻어나는 걸 보니 응고가 잘된 모양이었다(응고가 덜 되었다면 우유 덩어리들이 깨지면서 손등에 묻어난다). 크롭웰비숍의 베트는 이제까지 내가 본 베트 중 가장 길고 거대했는데, 야렉은 베트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골고루 응고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곳곳에서 커드를 손등을 올려본 후에야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이건 커드를 자르는 나이프인데 줄의 간격이 1.8cm예요”
야렉이 보여준 커드 나이프는 폭이 60센티미터쯤 되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사각 틀에 철사가 1.8센티미터 간격으로 엮여 있었는데, 철사 방향이 가로로 엮인 것과 세로로 엮인 것 두 종류였다. 각각을 베트 깊이 집어넣어 한 번씩 지나가면 커드 덩어리가 가로세로 1.8센티미터인 정육면체로 잘린다. 이 커드 나이프의 철사 간격은 치즈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수분이 많은 치즈를 만들 때는 간격이 넓은 나이프를 써서 커드를 크게 자르고, 건조하고 단단한 치즈를 만들 때는 간격이 촘촘해 커드를 거의 쌀알만큼 작게 자를 수 있는 나이프를 쓴다. 커드 덩어리가 작을수록 커드 속 수분이 빨리 빠져 커드가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커드를 자른 뒤 베트는 그대로 1시간 반을 둔다. 그러면 무거운 커드는 베트 바닥으로 가라앉고 위에는 그러고 남은 우유의 수분, 즉 훼이(whey: 맑은 우유의 물)만 남는다. 이제 훼이를 분리하는 작업을 할 차례다. 먼저 베트에 파이프를 연결해 커드와 훼이를 다른 배트로 옮긴다. 여기서 커드만 건져내 치즈를 만들 것이기에 좀 더 깊이가 얕은 베트로 옮겨 작업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얕은 베트로 모두 옮기고 나면 커드만 남도록 훼이를 배트 밖으로 빼내는데, 처음엔 훼이가 콸콸 쏟아져 나가도록 배수구를 열어놨다가 훼이가 절반가량 남았을 즈음부터는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게 배수구를 막아버렸다.
베트 끝에 커다란 망을 걸고 훼이를 배출한다. 그래야 커드는 걸리고 훼이만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또한 배수구에 구멍이 뚫린 긴 파이프를 꼽아 훼이가 바닥이 아닌 중간에서 빠져나가게 하는데, 파이프에 중간중간 뚫린 구멍을 통해 배수구의 높이를 올려 훼이 배출의 유량을 조절하기 위해서다.
“이제 끝났어요. 이대로 그냥 두면 돼요.”
이게 끝이라고? 커드를 건져내려면 베트에 남은 훼이를 빨리 빼야 하는 게 아닌가? 이제까지 봐온 치즈 제조 과정에서는 우유가 응고되면 베트에서 훼이를 빼내고 커드를 건져 치즈 틀에 넣기 바빴다. 이를테면 카망베르같이 말랑말랑한 치즈는 베트에서 커드를 건져 바로 치즈 틀에 넣곤 하루 이틀 동안 커드 속의 훼이가 천천히 빠져나가도록 두었다. 에멘탈이나 그뤼에르같이 단단한 치즈들 역시 커드를 건져 바로 치즈 틀에 넣곤 기계나 돌로 눌러 커드 속의 훼이를 인위적으로 빼냈다. 그렇지만 스틸턴은 커드를 치즈 틀이 아닌 베트에 그대로 놔둔 채 하룻밤을 보내며 훼이를 천천히 빼낸다고 했다. 그렇게 급작스레 스틸턴 제조 1차 과정이 끝났다.
**치즈의 종류에 따라 커드의 크기가 달라진다.
까망베르는 연성치즈로 커드를 국자로 떠내어 치즈 틀에 바로 넣는다. 그리곤 커드 속 훼이가 천천히 빠져나가게 이틀 동안 둔다. 반면 그뤼에르 에멘탈은 경성 치즈로 커드를 쌀알 크기 정도로 자른 후 훼이를 분리 후 치즈 틀에 넣는다. 그다음 압력 기계에 넣어 치즈를 눌러 커드 속 훼이를 한 번 더 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