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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턴 치즈 틀 작업, 후프에 커드 넣기

Blue Stilton cheese  hoop process

by 민희 치즈 Aug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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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꼽아 놓은 건 배수량을 조율하는 파이프다. 바닥에 있는 배수구에 길다란 파이프를 껴 두면 훼이가 열어 놓은 구멍의 높이 만큼만 빠져 나간다.


다음 날 아침, 커드는 매트리스처럼 배트 가득 평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득 차 있던 훼이가 다 빠져나가 순두부 같았던 어제와는 달리 단단한 모두부 같은 질감이었다. 야렉이 배트 앞에 서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커드를 조금 떼어내 보여주었다.  

“커드가 잘 나왔네요. 이렇게 아침까지 촉촉하려면 전 날 훼이 빼내는 양을 잘 조절해야 돼요. 너무 빨리 훼이가 빠져나가면 아침에 커드가 다 말라버리죠.”

어제까지만 해도 우유 향 가득했던 커드는 하룻밤 새에 발효되어 시큼한 향을 풍기고 있었다. 몸에서 훼이를 빼냄과 동시에 따뜻한 실내 기온을 이용해 젖산을 생성시키며 아침까지 수분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아주 바쁜 밤을 보낸 것이었다. 아주 부지런하고도 기특한 커드였다.

연구실의 헤더는 치즈의 품질이 균일하게 유지되도록 매 단계마다 치즈를 검사하는데 그녀의 승인이 떨어져야 치즈의 다음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연구실의 헤더는 치즈의 품질이 균일하게 유지되도록 매 단계마다 치즈를 검사하는데 그녀의 승인이 떨어져야 치즈의 다음 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이 순간, 이른 아침부터 핀셋과 작은 봉투가 담긴 바구니를 든 인물이 등장해 회진하는 의사처럼 작업장을 순회했다. 연구실의 헤더였다. 그녀가 하는 일은 배트에 가득 담겨 있는 커드에 온도계를 꽂아 내부 온도를 측정한 후, 훼이와 커드를 조금씩 채취해 균 상태와 산성도 등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크롭웰비숍에서는 제조 과정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구원들의 검사를 통해 치즈를 관리하기 때문에 헤더는 작업장 회진을 매일 아침마다 했다. 헤더가 연구실로 가져간 샘플이 모든 기준을 통과하면 제조장으로 연락이 오고 마침내 커드를 치즈 틀에 넣는 작업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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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커드 전체에 선을 그어 커드를 자른 후  커드를 떠내는 도구인 레이들을 이용해  한 덩이씩 들어내어 분쇄기에 넣는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커다란 분쇄기가 작업장에 들어와 배트 옆에 세워졌다. 배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커드는 조직이 단단하게 뭉쳐져 사각 블록으로 잘라 들어 올려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게 자른 커드 블록을 바로 분쇄기에 밀어 넣었다. 커드를 땅콩만 한 크기로 갈아낸 뒤  한 컵의 소금과 섞은 후 비로소 치즈 틀에 부어 넣는데, 소금은 커드 양의 25%가량을 넣는다. 이날은 1120그램의 분쇄된 커드에 290그램의 소금이 섞였다. 이를 후프 hoop라 불리는 반투명 플라스틱 통에 부어 넣었다. 긴 원통형에 위아래가 뚫려 있는 모양새라 그렇게 부르는 듯했다. 후프에 넣는 커드의 양이 워낙 많아 건장한 남성 작업자들도 끙 소리를 내며 작업을 했다.

후프에 들어간 커드는 소금의 삼투압 현상으로 몸속에 남은 훼이를 계속 빼내는데, 일주일이 지나면 무게가 1~3킬로그램가량 줄어든다. 완성된 스틸턴 치즈 무게가 7~8킬로그램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량의 수분을 초기에 빼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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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드를 땅콩만 한 크기로 갈아낸 뒤  한 컵의 소금과 섞은 후 비로소 치즈 틀에 부어 넣는데 커드가 워낙 무거워 2인1조가 되어 작업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9


한창 소금이 섞이고 있는 커드를 바라보고 있자니 우유 향 가득한 팝콘 앞에 서 있는 듯 입안에 침이 고였다. 내가 맛을 봐도 되는지 묻자 사람들은 “물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맙소사,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짠 게 아닌가! 그런 나를 보고 다들 ‘걸려들었구나!’ 하는 얼굴로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고는 바로 소금이 섞이지 않은 밍밍한 커드를 내밀며 입안을 헹구라고 했다.

소금이 잔뜩 섞인 커드가 짠 줄 알면서도 그 달달한 우유 향에 못 이겨 이후로도 몇 번이나 커드를 집어 먹곤 했는데, 그때마다 소금 비율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보통 음식에 소금을 쓸 때 짠맛을 내기 위해서, 아니면 음식 속 수분을 제거해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한다. 어쨌거나 발효 또한 미생물의 작용인데, 그 미생물의 작용을 촉진해야 하는 치즈 제조에 소금을 쓰는 게 의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치즈 제조에서 소금은 젖산 발효를 돕는 역할을 한다.

 절임음식을 만들 듯 소금을 많이 써서도 안 되고, 젖산 발효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 약하게 써서도 안 된다. 이곳의 커드 역시 짜긴 하지만 혀가 아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절묘한 비율이 치즈 제조의 비법인 것이다. 그 비율을 오래전부터 알고 스틸턴 치즈가 지금까지 내려올 수 있게 한 것이 이네들의 발효과학이었던 게다.


커드를 채운 후프는 4일 동안 23℃를 유지하는 방에 두고, 5일째 되는 날에는 17℃를 유지하는 방으로 옮겨 하루 동안 둔다. 이 기간 동안 후프 밖으로 흥건할 만큼 많은 훼이가 빠져나오는데, 골고루 빠져나오게끔 하루에 한 번씩 몸체를 뒤집어주어야 한다.

 후프의 높이는 41센티미터, 직경은 21.5센티미터. 훼이가 빠져나올 수 있게 몸통에 작은 구멍이 48개 있고, 위아래 또한 뚫려 있어 네모나고 납작한 받침을 따로 사용한다. 후프의 높이는 41센티미터, 직경은 21.5센티미터. 훼이가 빠져나올 수 있게 몸통에 작은 구멍이 48개 있고, 위아래 또한 뚫려 있어 네모나고 납작한 받침을 따로 사용한다.
 촬영 노트에 그린 후프, 아이보리색 후프가  사진으로 표현이 잘 안 되어 물빠짐 구멍까지 상세히 그려 놓았다. 촬영 노트에 그린 후프, 아이보리색 후프가  사진으로 표현이 잘 안 되어 물빠짐 구멍까지 상세히 그려 놓았다.
내가 입은 앞치마에는 THE BOSS 라고 적혀 있다. ^^내가 입은 앞치마에는 THE BOSS 라고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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