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치즈의 시작, 페니실륨 로케포르티
“카메라는 여기에 두고요. 시계, 작은 액세서리 등은 다 빼야 해요. 안에 들어가면 온도가 높아 더울 테니 점퍼도 여기 두세요. 아, 그리고 메모하려거든 볼펜은 이것만 사용해야 돼요.”
치즈 제조장에 들어가려면 공항 검색대에서보다 더 삼엄한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했다. 사무 담당 매니저 마크가 이렇게 말하며 내 손에 파란색 볼펜을 쥐여주었다. 볼펜을 뱅그르르 돌려보니 여느 볼펜보다 거친 마감에 두꺼운 플라스틱 몸통을 가졌다.
“팩토리 펜 Factory Pen이라고 불러요. 만약 치즈에 섞여 들어가도 최종 검사를 할 때 기계에 감지되는 소재라 식품 사고를 막을 수 있죠. 다른 펜들은 감지되지 않으니 작업장에서는 꼭 팩토리 펜만 써야 해요.”
사무실에서 1차 점검을 마친 후 마크와 함께 건너편 건물에 있는 치즈 제조장으로 갔다. 제조장 입구에서 2차 위생 절차를 거쳤다. 흰 가운에 흰 고무장화, 거기에 일회용 머리망을 귀까지 덮어썼다. 손을 세척용 비누로 씻는 것은 물론, 고무장화를 신은 발은 소독액에 담갔다가 자동으로 회전하는 솔에 갖다 대 벅벅 닦아냈다. 솔이 달려있는 기계에 한 발씩 넣어야 했는데, 어찌나 세게 돌아가던지 온몸이 덜덜 떨려서 누가 옆에서 좀 잡아줬으면 싶을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제조장 문 앞에서 아주 뜨거운 물에 손이 익을 정도로 씻고, 알코올 범벅인 소독제를 로션처럼 발랐다. 병원 무균실도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완벽한 소독을 한 다음에야 제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제조장 안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베트 vat(액체를 담는 데 쓰는 대형 통)가 아홉 개 있었는데, 다섯 개는 우유를 데우는 데 쓰이고, 네 개는 응고된 우유(커드 curd)를 건져내 작업하는 베트라고 했다. 이 아홉 개의 베트가 매일 돌아가며 치즈를 만들기에 크롭웰비숍은 1년 내내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단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스틸턴 블루치즈는 다섯 종류.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 세 종류였다. 클래식 블루 스틸턴 Classic Blue Stilton은 살균우유에 식물성 레닛을 사용해 만드는 치즈로 벨벳 느낌의 부드러운 스틸턴 치즈이며 12주간 숙성시킨다. 오가닉 블루 스틸턴 Organic Blue Stilton은 지역의 토양협회에서 인증받은 유기농 우유에 식물성 레닛을 사용해 만드는 치즈로, 역시 12주간 숙성시킨다. 트레디셔널 레닛 블루 스틸턴 Traditional Rennet Blue Stilton은 살균우유에 동물성 레닛을 사용해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스틸턴 치즈로, 숙성 기간은 15주 이상이다.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그 어떤 치즈라 해도) 단순화하면 이렇다. 우유를 준비한다. 단백질을 응고시킨다. 수분을 제거하고 모양을 잡는다. 숙성시킨다. 단백질을 응고시킨다는 면에서 두부와 비슷한데, 콩물을 끓이고 간수(응고제)를 넣어 두부를 만드는 것처럼 치즈를 만드는 과정의 첫 단계도 우유를 응고시키는 것이다.
이 중 우유를 응고시켜 수분을 제거한 덩어리를 치즈 틀에 담기까지의 초기 과정을 ‘우유 작업’이라고 하는데, 처음 며칠 동안은 종일 베트 앞에 서서 우유 작업만 보는 시간이었다. 젖소를 키우지 않는 크롭웰비숍에서는 근교 농장들로부터 우유를 공급받는데, 일반 우유와 유기농 우유를 따로 받는다. 이 우유는 제조장 옆 건물의 우유 처리실에서 고온 살균을 거쳐 매일 새벽 6시에 파이프를 통해 각각의 베트에 공급된다. 이때 유의할 점이 있다. 유기농 치즈(오가닉 블루 스틸턴)를 만드는 날은 유기농 우유를 가장 먼저 파이프로 흘려보내야 한다. 일반 우유에 유기농 우유가 섞이는 건 상관없지만, 유기농 우유에 일반 우유가 섞이면 유기농으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유가 베트에 채워지면 산성도를 측정한다. 기준 산성도는 1.15~1.38%로, 이를 바탕으로 우유에 첫 번째 첨가제인 스타터 starter, 즉 발효에 필요한 유산균을 넣는다(두부와의 결정적인 차이가 이것이다. 두부는 응고시키는 것으로 끝이지만 치즈는 발효 제품이기 때문이다). 매일 들어오는 우유의 산성도는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날의 우유 산성도가 기준보다 낮을 땐 스타터 양을 늘리고, 기준보다 높을 땐 스타터 양을 줄이는 식이다. 베트에 채워진 우유는 자그마치 1만 2,000리터였고 여기에 넣는 스타터는 고작 80밀리리터였다. 1리터짜리 우유가 1만 2,000개나 들어간 통에 작은 요구르트 용량의 균이 들어간 것이니, 우유 산도 변화에 스타터의 양 또한 극소량만 움직였다.
“저어볼래요?”
한참 동안 베트 옆에 서서 지켜만 보고 있던 치즈메이커 야렉이 내게 우유를 저을 기회를 주었다. 우유를 젓는 이유는 스타터가 우유 속에 골고루 섞이도록 하는 것, 또한 스타터를 넣은 후 바로 우유에 붓는 푸른색 액체를 잘 섞기 위해서였다.
푸른색 액체, 이것이 바로 블루치즈를 블루치즈로 만들어주는 페니실륨 로크포르티균이다. 내가 크롭웰비숍의 치즈 제조 과정을 꼭 보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페니실륨 로크포르티균이 치즈 제조 과정 중 어떻게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사기에 균을 넣어 치즈에 주입한다는 얘기도 들었고, 치즈에 구멍을 내면 푸른곰팡이가 저절로 생긴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료를 찾아볼 때에도 스틸턴 치즈에 푸른곰팡이 균이 쓰인다는 내용만 있지 균이 언제 어떻게 들어가는지에 관한 설명은 찾지 못했기에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궁금하고 신비롭게 느껴지던 과정이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우유에 부어버리고 끝이라니! 1리터 정도의 물에 균 원액을 섞어 우유에 부었지만 ,그 비율이 궁금했지만, 살필 겨를은 없었다. 나중에도 이 비율은 비밀인 듯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야렉이 건네준 긴 막대기로 페니실륨 균이 아주 잘 퍼지도록 우유를 힘껏 저었다. 1만 2,000리터의 우유에 파란 잉크처럼 떠다니던 푸른색 균은 순식간에 우유 속으로 흡수되어 자취를 감췄다.
“노를 젓는 기분이에요.”
내 말에 야렉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이걸 저을 때마다 출렁거려서 꼭 우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기분이에요.”
우유를 젓는 그 짧은 순간, 크림 향 가득한 우유에 둘러싸여 있는 내가 얼마나 황홀한 기분이었는지 설명해도 그는 모를 것이었다. 수년 전 처음 치즈를 찾아다니던 때의 기억들까지 모두 끄집어내는 묘한 시간이었다.
스타터와 페니실륨 균을 넣고 15분이 지나면 우유를 응고시켜주는 레닛 Rennet을 넣는다. 레닛을 넣으면 액체였던 우유는 흡사 순두부 같은 형태로 응고되는데, 그 응고된 덩어리들을 건져내 굳힌 것이 바로 치즈다. 크롭웰비숍에서는 치즈 종류에 따라 전통적인 동물성 레닛뿐 아니라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물성 레닛을 골라서 사용한다. 이날은 오가닉 블루 스틸턴을 만드는 날이었기에 식물성 레닛을 사용했다.
** 동물성 레닛 Animal Rennet은 송아지의 위에서 추출한 산, 식물성 레닛 Vegetable Rennet은 무화과 등의 식물에서 추출한 산으로 만든다. 식물성 레닛으로 만들면 채식주의자를 위한 치즈로 분류된다. 식물성 레닛은 동물성 레닛보다 산성도가 4배가량 높아, 동물성 레닛 기준 4분의 1 정도 되는 양만 사용한다(레닛 제조사에 따라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보통 식물성 레닛이 동물성 레닛보다 산성도가 높다). 그렇지만 치즈의 풍미는 동물성 레닛으로 만든 경우가 더 좋다고 한다. 크롭웰비숍에서는 오가닉 블루 스틸턴과 일반 블루 스틸턴에는 식물성 레닛을, 트레디셔널 레닛 블루 스틸턴에는 동물성 레닛을 사용한다. 전통적인 방식은 동물성 레닛을 넣는 것이라는 의미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