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 OF BLUE STILTON CHEESE
숙성실의 전체적인 흐름은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습도 또한 높은 습도에서 낮은 습도로 향한다. 치즈의 발효 상태는 방을 옮겨 갈 때마다 진전되어, 2번 방에서는 생크림 케이크 같던 하얀 치즈가 8번 방에서는 매마른 통나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당연한 듯한 흐름이 턱 막히는 곳이 암모니아 가스로 눈이 매웠던 5번 방이다. 앞선 방들에 비해 온도도, 습도도 낮았다.(습도 82%에 온도는 16℃) 하지만 곰팡이는 최상의 활성도를 보였다. 온도를 높인 곳에서 균을 활성화시키고, 활성화된 균이 온도를 낮춘 방에서 본격적인 발효를 하는 건 곰팡이가 이미 시작된 치즈의 발효가 너무 빨리 진행되면 오히려 부패가 될 수 있거나 치즈의 풍미가 완성되기 어렵기에 이를 막기 위해 온도와 습도를 내려 천천히 발효가 진행되도록 한 것이었다. 숙성실을 몇 번 들락거렸다고 해서 치즈를 쉽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스틸턴은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각 숙성실 마다에서 치즈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나는 그들이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흘 동안 플라스틱 고글을 끼고 숙성실에서 살다시피 하자 비로소 발효는 무조건 온도만 높인다고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며, 온도를 낮춘다고 멈추는 것도 아니라는 곰팡이균 활성의 미묘한 흐름을 깨닫게 해 주고서야 치즈들은 마지막 9번 방으로 나를 보내주었다.
스틸턴 치즈의 평균 숙성기간은 12주, 동물성 레닛을 쓴 경우에는 15주다. 마지막 숙성실인 9번 방에 들어가는 치즈는 숙성 9~10주째로 이 방에서 판매될 준비를 마친 뒤 전국 각지로 운송되는데, 소매점으로 이동하고 판매되기까지 2~3주가 걸린다. 9번 방은 사실 숙성을 완성시키는 방이 아니라 일종의 대기실이다. 이곳에 있는 치즈가 소매점으로 운송되고, 소매점에서 진열・판매되는 과정에서도 치즈는 멈추지 않고 발효가 된다. 고객이 치즈를 구입할 때 숙성 기간이 딱 맞도록 시간이 계산되는 것이다.
9번 방에는 완성된 스틸턴 치즈가 이동식 선반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판매를 앞둔 이 스틸턴 치즈는 9번 방 책임자이자 치즈 제조업계에서 30년을 일한 돈(Mrs.Dawn)에게 넘어갔다. 그녀가 치즈 아이언으로 일일이 최종 테스트를 한 후에야 비로소 치즈가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스틸턴 치즈는 푸른곰팡이가 균일해야 하고, 치즈 중심에서 외벽 끝까지 빈틈없이 퍼져 있어야 해요. 치즈 속은 하얀색이 아닌 노란색을 띠어야 하고, 조직은 쫀쫀하고 찰진 느낌이어야 하죠.”
크롭웰비숍은 매년 수많은 대회에 참여해 치즈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데, 이날도 돈은 다음 대회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다. 돈은 바쁜 와중에도 아이언에 뽑혀 나온 치즈를 보여주며 스틸턴 치즈에 관해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이사이 방 안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직원들을 불러 지시를 내리곤 했다.
“거기! 그 선반에 있는 스틸턴! 내가 확인하지 않은 건 출고하면 안 돼!”
작업자 중 한 명이 선반을 정리하기 위해 치즈를 잠시 움직인 것인데, 행여 테스트한 치즈와 테스트하지 않은 치즈가 섞일까 걱정하는 돈의 깐깐한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끝까지 치열해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스틸턴 치즈의 마지막 과정까지 보고 나자 마침내 크롭웰비숍에서의 내 2주가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틀 후, 오랫동안 머물렀던 노팅엄을 떠났다. 매일같이 드나들던 테스코 슈퍼마켓과 웨이트로즈가 있는 길을 지나 떠나기 전날에야 겨우 들어간 카페 네로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일들을 정리했다. 이른 새벽에 나가서는 지친 몸으로 돌아와 잠만 잤던 생활 탓에 동네에 뭐가 있는지 떠나기 전날에야 눈에 담아둘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런던을 거쳐 파리로 향했다. 실은 자동차를 끌고 다시 영국으로 넘어올 결심에 크롭웰비숍에 있는 동안 프랑스 자동차를 빌려버린 것이었다. 크롭웰비숍에서 영국 치즈에 입문했으니, 이젠 진짜 영국 치즈를 봐야 할 것 아닌가! 나는 예약해둔 자동차가 있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시 시작됐다.
크롭웰비숍 크리머리
Cropwell Bishop Creamery Limited
Cropwell Bishop, Nottingham, Nottinghamsh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