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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Sep 12. 2021

전통의 체더치즈,퀵스데어리

퀵스 데어리로 가는 길 Quicks Traditional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 자동차가 농장 입구에 들어서자 바닥의 흙과 바퀴가 맞물려 바스러지는 소리를 내다가 주차와 함께 멈췄다. 나를 안내해주던 자동차가 멈춰 선 곳은 치즈가게 앞이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시골의 퀵스 치즈가게는 불이 켜져 있었다. 먼저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조금 전 우리가 길 위에서 나눴던 대화를 직원에게 상세히 전했고, 나는 그저 멋쩍은 얼굴로 뒤에 서 있었다. 상점 직원과의 대화가 끝나자 아저씨는 잘될 것이라며 나를 다독이곤 가게를 나섰고, 나는 다시 덩그러니 혼자 남아 직원의 안내대로 테이블이 있는 곳에서 앉아 기다렸다.

‘일이 잘 풀릴까, 여기서도 안 풀리면 어떡하지.’

날씨만큼이나 기분도 회색이었다.

 

 메리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50대 중반에 170cm는 훌쩍 넘는 큰 키, 짧은 은발, 막 농장에서 일하다 온 것처럼 두꺼운 점퍼를 입은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친근한 인사를 건넨 뒤 일단 몸을 녹이자며 밀크티를 내왔고, 인자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었다.

“다 봐요. 원하는 대로 다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잠은 어디서 자나요?”

“근처 캠핑장에서 지낼 거예요. 항상 그래 왔어요.”

“그럼 우리 집에서 지내요. 집에 남는 방이 있어요. 갑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메리를 끌어안아버렸다. 길 잃은 성냥팔이가 따뜻한 가족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이야기하기 시작한 게 겨우 10분 전인데, 그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지난 일주일간 나는 치즈는커녕 캠핑장만 전전했다. 영국으로 넘어오는 것 자체가 워낙 큰일이어서 무사히 입국하기만 하면 다음 일들은 수월하게 풀릴 줄 알았다. 그간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까지 치즈 농가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인 데다 가장 오래 배운 영어를 쓰는 나라가 아닌가. 경험도 있고 자동차까지 다시 생겼으니 치즈 농가를 찾아다니는 일은 술술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아니었다. 이곳저곳 전화를 해봐도 ‘와도 된다’는 곳이 없었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조차 깐깐했다. 영국은 모든 조건을 갖추었지만 정작 중요한 ‘접근’이 안 됐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남부의 작은 캠핑장만을 돌고 돌던 중 런던의 리펀 치즈가게에서 들었던 한마디, “퀵이지요. 메리 퀵, 그녀라면 당신을 꼭 도와줄 거예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찾아와, 주소만 들고 근처에서 길을 헤맸다. 그러다 농가 마당에서 서 있던 분에게 길을 물었을 때, 우연찮게도 그는 메리의 농장에서 20년 넘게 직원으로 일했던 분이었다. 환갑이 넘은 인자한 농가의 주인은 메리의 농장으로 안내해주었고 나는 길 잃은 성냥팔이 소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체더치즈의 험난한 생존     

 체더는 영국 남서부 서머싯 Somerset주가 원산지인 치즈다. 최초의 언급은 헨리 2세가 왕으로 집권하던 1170년에 체더치즈를 구입했다는 기록이 있어 최소 12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지나 그 이전에 이 치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오래전부터 젖소를 키우는 농가들에서 우유를 모아 협동조합 방식으로 만들었기에, 체더의 제조법은 모든 농가가 공유했다. 덕분에 많은 농가가 어렵지 않게 치즈를 제조할 수 있던 반면, 제조법이 남용되는 단점도 발생했다.

 중세의 기록에 따르면 치즈 만들기는 이미 지역에서 보호를 했지만 그보다 더 정확한 정보는 현대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자유롭게 사용된 체더치즈 제조법은 영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졌고, 이로 인해 정통 체더치즈의 제조법이 붕괴되었다. 원통형 몸통에 천을 감아 수개월의 숙성을 거쳐 어두운 아이보리색(혹은 갈댓잎 색)을  가지는 깊은 풍미의 체더치즈는 사라지고 붉은빛 색소를 넣고 플라스틱 틀에서 숙성시킨 치즈가 체더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때문에 현재까지 체더는 영국의 오랜 치즈라기보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얇게 슬라이스 된 붉은빛 가공 치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전통방법으로 만든 체더는 원통형 모양에 내부는 아이보리색(혹은 갈댓잎 색)을 띈다.

체더가 영국의 치즈로 알려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섬나라이기에 전쟁 중 물자 수송이 수월하지 않아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는 동안 유럽의 어느 국가보다 식량정책에 많은 제한을 두었다. 식량의 완전 소진을 막기 위해 모든 국민은 식료품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지역 상점에 개인정보를 등록해야 하고 이에 따라 배급 수첩(Ration book)을 받았다. 그런 후에 수첩 안의 쿠폰이나 혹은 도장을 이용해 식료품을 횟수만큼만 구입할 수 있었다. 영국 정부는 농가에서 생산되는 우유 이용에도 제한을 두었다. 지역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지던 치즈 대신 한 종류의 치즈만 만들도록 강제했다. 그 이름이 ‘정부의 체더치즈 Government Cheddar Cheese’다. 특정 방식으로만 제조된 이 체더만이 판매되었다.

체더를 감싸고 있는 모슬린 천을 벗겨낸 후 단면을 잘라보면 짙은 아이보리빛의 곱디 고운 자태를 보인다.

 이렇게 치즈는 전쟁 중 식량 제한 정책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 전역 3,500여 개에 이르렀던 많은 치즈 농가가 사라져 버렸고,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정부의 더 강한 제제로 그 나마의 농장들조차 허가제로 운영되어 1945년엔 고작 100여 개의 치즈 농가만이 남았다.

체더치즈의 원산지인 영국 남서부에는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500여개의 농장에서 다양한 체더치즈가 제조되었지만 치즈 규격화로 인해 1974년에는 고작 30여 개의 농장만이 남았고 그나마 다양했던 맛조차 비슷해졌다고 한다. ‘정부의 체더치즈’ 제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9년이 지난 1954년까지 유지되었다. 이것이 영국 정통 체더치즈의 몰락을 가져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전 세계적으로 체더라는 이름을 치즈에 사용하는 것은 제재가 없다.

 단지 영국의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체더만이 West Country Farmhouse Cheddar cheese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 현재까지 영국 전통 방식의 체더를 만드는 대표적인 농장은 몽고메리 치즈 MONTGOMERY CHEESE, 킨스 체다 KEENS CHEDDAR 그리고 메리의 농장인 퀵스 트레디셔널 Quickes Traditional 세 곳이다.


 이 중 퀵스 데어리는 영국 남서부 데번 Devon주의 뉴턴 세인트 사이러스 Newton St Cyres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헨리 8세(재위 1509~1547) 시대부터 지금까지 500여 년간 14대를 이어 온다고 한다. 처음엔 젖소만 키우는 농장이었는데, 1930년대부터 치즈 제조를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농장들처럼, 2차 세계대전 즈음에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치즈 제조를 중단하고 농장에서 짠 우유는 정부에 납품하다 1973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치즈 제조를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살균하지 않은 우유(non-pasteurized milk)로 체더치즈를 만들었지만, 1973년부터 지금까지는 쭉 살균한 우유를 써서 만든다. 때문에 퀵스의 체더는 POD** 승인은 받지 않았다. 


**Protected Designations of Origin

원산지의 명칭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프랑스에는 같은 의미로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제도가 있다.

       


 **체더치즈는 가공한 체다슬라이스로도 유명하다.

https://brunch.co.kr/@minheecheese/7



   


 

메리는 저장고의 선반에 있는 온도. 습도계의 수치를 확인하고 기록했다.
퀵스의 가장 큰 저장고는 학교의 체육관 만큼이나 거대한 규모였다. 사진 오른쪽 치즈를 일일이 둘러보는 메리.

차를 다 마시자 농장을 나서자며 일어난 메리는 잠시 치즈 숙성고를 둘러보자고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 탓에 아직 오후임에도 가로등을 켜야 할 만큼 길이 어두웠다. 치즈가게를 나와 농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소를 키우는 우사(牛舍)와 높이가 낮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메리와 함께 들어간 첫 번째 숙성고는 문을 열자마자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높은 습기가 훅하고 밀려 나왔다. 곰팡이를 가득 피운 체더치즈들이 선반마다 빼곡히 쌓여 있었고 메리는 치즈 몇 개를 뒤집으며 상태를 본 뒤 습도계의 수치를 확인했다. 그렇게 총 세 곳의 치즈 숙성고를 둘러봤는데, 치즈의 숙성 정도에 따라 혹은 훈연한 치즈나 허브를 넣어 만든 치즈 등 종류에 따라 나뉘어 저장하는 것이었다. 세 곳의 숙성고는 10미터에서 30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고 가장 큰 숙성고는 100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었는데, 멀리서 봐도 아주 거대한 건물이었다. 메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도 치즈 제조장이며 농장 안의 기본적인 건물들의 위치를 알려줬는데 송아지들이 풀을 뜯는 낮은 언덕에 젖소 유축장까지 있는 농장은 하나의 마을처럼 없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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