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희 Dec 03. 2021

체더치즈를 체더답게, 체더링

 Cheddaring, making of Cheddar cheese


잘게 잘린 커드는 크롭웰비숍에서와 마찬가지로 좀 더 길고 얕은 배트로 옮겨져 훼이를 빼낸다. 훼이가 폭포수처럼 빠져나가면서 배트에는 쌀알만 한 커드만이 모래성처럼 쌓이는데, 작업자들은 쌓인 커드를 배트 양옆으로 밀어 가운데에 물길을 만들었다. 남은 훼이가 계속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쌓인 커드를 평평하게 다독여준다. 아직 40℃의 온기가 남아 있는 이 커드 알갱이들을 다독이면 서로 엉겨 붙어 점차 거대한 덩어리가 된다. 작업자들은 이 덩어리 커드에 기다란 스테인리스 나이프를 깊이 찔러 가로세로 방향으로 칼집을 넣었다. 이제 체더치즈를 체더치즈로 만드는 작업, 체더링Cheddaring 시작될 차례다.     

배트에는 쌀알만 한 커드만이 모래성처럼 쌓이는데, 작업자들은 쌓인 커드를 배트 양옆으로 밀어 가운데에 물길을 만들었다
이 덩어리 커드에 기다란 스테인리스 나이프를 깊이 찔러 가로세로 방향으로 칼집을 넣었다.
작업자들은 이 커드 덩어리들을 일일이 뒤집기 시작했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뒤집은 후, 다시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모든 블록을  뒤집었다.

 일반적인 치즈 제조 과정은 우유에 레닛을 넣고 응고시켜 만든 커드를 작게 자른 뒤 훼이를 빼내고 몰드에 바로 넣는 것이다. 이에 비해 체더치즈는 몰드에 넣기 전 한 단계를 더 거치는데, 그것이 바로 ‘체더링’이다. 커드를 직육면체 블록으로 잘라 뒤집고 쌓아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이를 통해 커드 속 훼이를 빼내는 동시에 산성도를 조절하고 단단한 조직과 입안에서 부서지는 듯한 식감을 갖게 한다.**( 맨 하단 설명 참조)

 커드가 어찌나 잘 엉겨 있던지, 직사각형 블록으로 잘린 커드 덩어리를 들어 올려도 부서지지 않고 훼이만 주르륵 빠져나갔다. 작업자들은 이 커드 덩어리들을 일일이 뒤집기 시작했다. 왼쪽 끝부터 오른쪽 끝까지 뒤집은 후, 다시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모든 블록을  뒤집었다. 이렇게 뒤집는 동안 조직 사이사이에 남아 있던 훼이가 빠져나가면서 커드의 질감은 처음보다 단단해진다. 


이제 작업자들은 나이프를 들어 커드 블록을 전부 반으로 자르고는, 이를 2단으로 쌓는다. 이쯤에서 훼이가 빠져나가도록 두고 쉬는 시간을 가지는가 싶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블록을 반으로 잘라서 위로 쌓자 베트안에 공간이 생겼고 작아진 블록들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뒤집히며 배트의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혹은 반대 방향으로 옮겨지고 쌓아지기를 반복했다. 위치를 옮기면서 뒤집는 작업을 하니 커드 바닥에 갇혀있던 훼이들이 더 잘 빠져나갔다. 그리곤 양쪽으로 나뉘어 있던 커드 덩어리들을 한쪽으로 몰아 쌓았다. 이렇게 하니  커드는 6단 높이까지 되어 맨 아래의 커드는 더 힘 있게 눌렸다. 작업을 20여 분간 계속하자 벽돌처럼 반듯했던 커드 블록들은 서로가 서로의 무게에 눌려 옆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밀대로 민 밀가루 반죽처럼 넓게 퍼졌다. 

도대체 이 작업이 언제 끝나는지 묻자 작업자들은 “훼이가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라고 했다. 일반적인 커드를 다룰 때보다 몇 배의 노동력이 들어가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정말이지 커드를 뒤집고 위치를 옮겨 또 뒤집는 동안 훼이는 끝없이 졸졸졸 빠져나왔다.     


마침내 체더링 작업이 끝나자 앤디가 나를 불렀다. 그는 널따랗게 퍼진 커드 덩어리의 표면을 엄지와 검지로 얇게 집어 뜯어내며 단면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닭가슴살처럼 결이 형성되면 체더링이 잘된 거예요.”

떼어낸 커드를 만져보니 제법 탄성이 있어 잡아당기면 고무줄처럼 늘어날 듯했다. 단면에는 수많은 결이 생겨나 있었다. 나는 자리를 옮겨 가며 몇 덩어리의 커드를 떼어내고 또 떼어냈다. 수십 번 뒤집어가며 겹겹으로 이뤄진 단면의 무게감을 기억해두고 싶어서였다.     


체더링이 끝나자 작업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거대한 분쇄기(Cheese mill)가 들어오고 배트 한가운데에 소금이 가득 찬 양동이가 놓였다. 이번에 할 작업은 넓게 퍼진 커드 덩어리를 분쇄기에 넣는 것이었다. 분쇄기를 통과한 커드는 엄지손가락만 한 크기에 불규칙한 모양으로 갈려 나오는데, 이때 두 사람이 커다란 쇠스랑으로 갈린 커드를 뒤집는다. 동시에 미리 준비해둔 소금을 골고루 뿌리는데, 소금 비율은 치즈 무게의 2.5%다. 분쇄 작업이 끝나자 이번에는 배트 앞에 커다란 선풍기가 세워졌고, 작업자들은 쇠스랑으로 갈린 커드를 골고루 뒤집기 시작했다.     


“아직 커드가 따뜻해서요. 커드 온도가 23℃까지 내려가야 몰드에 넣을 수 있거든요.”

드디어 커드 온도가 23℃로 내려가자 배트 옆에 체더치즈용 몰드가 준비됐다. 깊은 원통형의 스테인리스 몰드의 무게는 11kg이나 됐다. 그 안에 흰 천을 깔고 28kg의 커드를 채워 넣어야 했는데, 체더링으로 인해 탄성을 갖게 된 커드는 아무리 눌러 넣어도 스펀지처럼 튀어나왔다. 때문에 몰드에 커드를 채우기 위해서는 남성 작업자 두 명이 양팔로 힘껏 눌러야  했다. 이제 커드 무게까지 더해져 39kg이나 된 몰드가 층층이 쌓여 전기 압축기에 들어갔다. 압축기가 작동하자 몰드들 사이로 훼이가 졸졸 흘러나왔다. 몰드는 이렇게 남은 훼이를 끝까지 빼내며 압축기에 눌린 채 24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압축기를 풀고 몰드에서 커드 꺼내자 완연한 원통형 치즈가 되어 있었다. 우선 치즈의 몸통을 감싸고 있던 흰 천을 벗겨낸 다음, 50℃의 소금물에 잠깐 담갔다 뺀다. 그리고 새로운 흰 천으로 감싸 몰드에 넣은 다음 한 번 더 압축기에 넣어 24시간 동안 둔다. 분쇄한 커드를 눌러 담아 만든 치즈이기에 체더치즈는 스틸턴 치즈만큼이나 표면에 구멍이 많다. 러빙업 나이프로 다듬었던 스틸턴 치즈와는 달리, 체더치즈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 빼냄으로 치즈 표면을 살짝 녹여 코팅하는 방식으로 구멍을 메운 것이다(스틸턴은 소프트 치즈이기에 뜨거운 물에 담그면 부서져버린다). 이렇게 몰드에 담긴 채 압축기에서 총 48시간을 보낸 치즈는 사흘째 되는 날부터 새로운 과정에 들어간다.


** 프랑스 남부에도 비슷한 치즈가 있다. 살레 Salers 치즈다. 2006년 첫 치즈 여행 때 본 살레 또한 하드 치즈로 체더와 마찬가지로 커드를 쌓아가며 훼이를 빼낸 후 작게 잘라 소금을 섞어 몰드에 넣어 만든다. 세세한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커드에 섞는 소금의 비율이 살레 2.4%, 체더는 2.5%로 아주 흡사하다. 체더는 800년 역사를, 살레는 2,000년 역사를 가진 치즈다. 영국 남서부에서 산 넘고 물 건너 1,000km가 넘게 떨어진 프랑스 남부와 비슷한 치즈가 만들어진다니, 과연 그 오래전에 소통을 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치즈를 만드는 방법이 본래 조금씩 비슷해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소금 비율까지 비슷한 두 치즈의 존재가 놀라웠다.


이전 04화 체더 치즈 만들기의 시작, 커드가 되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