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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장례식

by 효돌이작까야

미국에서 큰 어머니가 오셨다.

”10월 중에 가족들을 모두 보고 싶구나, 아마도 내가 한국에 가는 것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래서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하고 싶구나 “

이 한마디로 우리 가족은 친가 식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모두 웃는 장례식”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암에 걸리신 할머니께서 당신이 죽은 다음 보고 싶던 가족들이 모이면 무슨 소용이냐며,

죽기 전에 장례식을 열어달라고 이야기하신 내용들이었다.


이 동화책 속 이야기가 나의 현실이 될 줄이야.


우리 친가는 고모님 두 분, 큰 아버지 세 분, 그리고 우리 아빠, 작은 아빠 이렇게 계셨다.

5남 2녀 7남매 중 우리 아빠는 여섯째이신 거다.

큰 아버지들이 살아계실 때는 뭐 이렇게 자주 모이나 할 정도로 모여서 우애를 다지고 지냈다.

그러면 뭐 하나 큰 아버지들이 돌아가시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연이 끊겼는걸.


그래도 미국에서 제일 큰 어머니께서, 다른 일도 아니고 살아계실 때 장례식을 하고 싶으시다는데..

끊어졌던 연을 다시 이어 볼 명목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연락들을 돌렸다.

우리 부모님도 연락이 닿는 어른들께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굳이…, 내가 왜…, 여태 안 보고 살았는데 뭐…‘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큰 어머니는 한국 사정을 모르신 체 기대만 커져가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고,

결국은 우리 아빠가족과 작은아버지 가족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살아있는 장례식이어서 그럴까. 기대했던 분위기가 나지는 않았다.

실제 장례식장이었다면 고인에 대한 미안함, 아쉬움, 그리움, 사랑함, 안타까움, 이런 감정들을 많이 느꼈을 텐데

각자가 살아오느라 힘들었던 이야기, 힘들어서 서로를 살피지 못해 서운했던 감정들이 더 많이 묻어있었다.

서로의 입장을 살피기보다, ‘나’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차라리 실제 장례식처럼 한쪽의 이야기만 듣는 것이 더 나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어머니는 화해하고 싶어서 한국에 오신 건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큰 마음먹고 큰 어머니와 만남의 자리를 가지신 건데,

서로가 어떤 마음을 느꼈을지..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 궁금해지는 밤이었다..


큰 어머니,

한국에 계시는 남은 기간 동안, 큰 어머니만의 송별회를 하시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 사셨던 날보다 미국에서 사신 날이 더 많으시니

이곳에서의 추억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가시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서요.

만나고 싶으셨던 분들이 만나주지 않더라도, 혼자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신다고 생각하시면서요.

한국과의 마지막 인사라 생각하시고 나머지 3주를 지내다 갑시다.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나요 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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