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행당역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멋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행운의 순간이 몇 번이나 올까?
어제 아침 선글라스 낀 귀여운 네 잎클로버가 데굴데굴 굴러서 내 손을 떠-억 잡아주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야
동네를 벗어나는 일이 많지 않은 집순이인데
어제는 여의도로 그림을 보러 가기로 정했다.
가는 길에 좋지 않은 감정을 느꼈는데
얼마 전 벌어졌던 5호선 방화사건으로 인한 분노였다.
지하철을 탄 시각은 오전 아홉 시였다.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각이었다.
그래서 원하든 원치 안 든 어쩔 수 없이 주고받는 온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로 막을 수 없는 화마를 뿌렸다니..
방화범이 일을 저지른 시각 오전 8시 42분
생각하니까 등골이 서늘해졌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그런 일이 또 반복되지 않기 위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툴툴 털어내고,
책을 읽자 싶어, 데미안을 읽으며 한참을 가는데 어느 어느 역이 되니 사람들이 우루루루 내렸다.
표지판을 보니 왕십리였다.
앉으려고 자리를 봤는데 지갑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지갑 주인은 이미 계단을 올라가라고 없었다.
어쩌나, 지갑은 내 손에 있는데..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찰나의 순간에 몸은 다음 역에서 내렸고,
머리에선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다. 찾으러 오더라도 가까운 역으로 올 수 있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역무원께 전달해 드리면 된다는 간단한 절차를 안내받았다.
절차대로 역무원께 전달해 드리고, 뒤를 돌아오는데
짧은 시간에 다음 역에 내려서 04년생 청년을 배려한 자신이 너무 멋지게 느껴지는 거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한 건데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건가? 싶어서 머쓱했다가
나라도 칭찬해 주자고 생각을 고쳤다.
잘했다! 이작가야!
더불어
우리 아이들도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점점 개인주의로 변해가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줘도
오해를 사게 되는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따뜻함을 1도 정도 지켜준 것 같아서 많이 흐뭇한 하루였다. 정말.
덧,
강 군.
지갑 잘 찾아갔나요?
없어져서 많이 당황했겠어요.
저는 강군 덕분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멋지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왜인지 저희 아들 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받을 수도 있겠다 하는 믿음도 생겼고요.
고맙습니다. 강군.
아! 어제 보고 온 그림은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