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딸이라서 미안해

엄마, 그거 아니잖아

by Bonita

엄마, 그거 아니잖아

엄마, 제발 그렇게 좀 하지 마

엄마, 요즘은 그렇게 안 해

엄마, 가져가도 안 먹어. 싸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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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점점 커 가면서 엄마한테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친구 부모님께는, 친한 언니한테는, 그냥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엄청 예의 있는 척, 싹싹한 척, '네, 좋아요' 하면서 정작 내 부모님한테는 그냥 알겠다고 하고 넘어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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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내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내가 잘났으면, 뭘 얼마나 잘났다고

이상한 것 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좀 가져가지

말이라도 한번 그냥 알겠다고 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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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매일 하루에 세 번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통화를 하기 전, 수 백번, 아니 수 천 번 오늘은 예쁜 말만 해야지를 되뇌었다.

근데 참 사람이.. 아니, 자식이란 게 그래.

사사건건 부모님이 하는 건 맘에 안 들어.

부모님은 점점 나이 들지, 시대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서서 인공지능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지. 사실 어쩌면 부모님이 못 따라가는 게, 뒤처지는 게 당연한 건데 그게 너무 속상하니까 예쁜 말이 안 나오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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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이런 일들이 있었어.

TV가 고장이 나서 화면이 안 나오고 소리만 나온대. 그럼 우린 당연히 AS를 부르거나, 새로 사지? 그게 우리한테는 당연하잖아. 근데 우리 부모님은 그걸 라디오처럼 듣는 거야.

내가 속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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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로션이 유통기한이 지났어. 그래서 내가 화장품을 새로 사줬는데, 전 스킨로션이 남았다고 그걸 그대로 쓰고 있는 거야. 아니, 좋은 것만 써도 모자란 시간인데.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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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가 고장이 나서 탈수가 안된대. 그럼 고쳐야지. 근데 고칠 수가 없대. 그럼 사야지. 이 시대에 옷을 손으로 짜서 말린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내가 답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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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집이 고물상도 아니고 못 버리고, 쌓아두기만 해. 그래서 청소한다는 핑계로 많은 걸 버렸어.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지. 왜 그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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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변에 챙겨주는 사람이 아주 많아.

예쁜 옷, 좋은 화장품, 맛있는 음식들을 굳이 내가 사지 않아도, 사 먹지 않아도 난 다 괜찮아.

근데 부모님은 다르지.

입고 다니는 옷으로, 가지고 다니는 지갑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레벨을 나누잖아. 그래서 난 정말 좋은 것만 해 주고 싶다고.

그래서 내가 돈 버는 거잖아.

난 이 세상에 진짜 돈 욕심, 아무 욕심 없어.

일하면서 버는 돈으로 우리 부모님 좋은 것, 맛있는 것 사 드리고, 드시게 하고 싶은 건데.

내 맘을 대체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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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진짜 너무 행복한데, 아주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 가끔 그 만족이 슬플 때가 있다. 나만 행복한 것 같아서.

그래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다 드렸었다.

그리고 내가 뉴질랜드에 도착함과 동시에 일제히 중지했다.

그건 내 후회였다. 부모님께 남는 게 없었으니까.

내가 드리면, 그게 부모님이 아닌 물건 사는데 보태지고, 빚 갚는데 보태졌으니까. 그게 난 너무 힘들었고,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나아지는 게 보이지 않았고,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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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누가 그러더라.

"네가 용돈을 준 걸로 부모님이 물건을 사는데, 빚 갚는데 썼어도 그게 부모님이 행복한 거면,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졌다면 그게 좋은 거 아니겠냐고. 한 번은 부모님께 '그건 아니지, 왜 그랬어' 이런 말보단 '잘했어, 엄마 아빠 마음이 편하면 됐어. 근데 엄마 아빠, 다음부터는 내가 용돈 준 걸로 옷을 사 입으면 내 마음이 조금 더 좋을 거 같아"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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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한 엄마한테 화를 내기보단

"엄마, 잘했어. 그럴 수도 있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엄마가 좀 많이 깨달았겠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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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도 그렇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부모님을 이해하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보다 더 힘들었을,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젠 조금이라도 헤아려보려고, 좀 이해해보려고.

따뜻하게 말하려고. 내가 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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