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한 몸

스마트 시대의 원초적 노동

by 하린

스마트폰 알림이 뜬다. 플랫폼 앱에서 새로운 작업 요청이 들어왔다. 화면을 터치해서 요청서를 보고 견적서를 보낼지 말지 결정한다. 일정 잡기는 채팅창에서 이루어진다. 내 노동의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스마트’하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풍경은 달라진다. 내 앞에 놓인 것은 최신식 장비도 자동화 기계도 아니다. 드라이버, 사다리, 펜치, 그리고 내 두 손뿐이다. 앱으로 호출받고 별점으로 평가되는 시대지만 정작 일을 완수하는 순간은 100년 전에도 존재하던 도구들과 함께 이루어진다. 무거운 전등을 들어 올릴 때의 어깨와 균형을 잡기 위해 버티는 무릎, 그리고 나사의 미세한 저항을 감지하는 손끝, 이 모든 것은 스마트폰이 대신할 수 없는 감각이다. 기술은 효율을 약속하지만 작은 나사의 고집을 돌려내고 벽의 미묘한 굴곡을 맞춰야 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몸이 앞장선다. 나는 첨단의 시대에 살면서도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세계에 닿는다.


도구를 손에 쥘 때마다 이상한 시간성이 느껴진다. 드라이버와 펜치는 내 아버지 세대,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쓰이던 것들이다. 플랫폼은 ‘새로운 시대’를 말하지만 나의 손은 늘 ‘오래된 도구’와 대화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접점에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기술철학자 시몽동은 기술은 언제나 고도화된 것과 원시적인 것이 함께 공존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매일 실감한다.

앱으로 호출받고 인공지능이 일감을 분배하는 한편, 실제로 나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낡은 드라이버와 손가락의 염증이다. 스마트 시대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효율과 자동화의 언어가 세상을 장악하는 듯 보이지만 그 효율은 여전히 낡은 몸을 전제로 작동한다. 나는 미래와 과거의 혼종적 존재다. 스마트폰으로 시작해 레트로한 도구로 끝나는 하루. 그 모순 속에서 나는 살아간다.


사람들이 조명을 셀프로 교체하기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감전의 위험성. 다른 하나는 실재계에 대한 거부감. 감전의 위험성은 차단기를 내리면 사라지는 것임에도, 모두가 그것을 알고는 있음에도 여전히 막연하게 존재하는 두려움이다. 이는 원초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전기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날것이라는 인식 또는 믿음. 이 맥락에서 전기는 라캉의 실재계로 연장된다. 천장에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면 그 속은 어둡고 불분명하다. 거기서 삐져나온 전선은 마치 이름 붙일 수 없는 뿌리처럼 뒤엉켜있다. 스위치나 등, 커버, 모듈은 규격과 설명서 속에 자리를 잡은 언어의 세계다. 그것들은 이미 상징계에 편입된 질서로서 손에 잡히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구멍은 달라서, 그것은 여전히 말로 닿지 않은 틈새로 남아 있다. 사람들의 눈앞에 놓인 이 구멍은 불안을 일으킨다. “저 안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손으로 만져도 되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이 숨어 있는 듯한 그곳은 라캉이 말한 실재계의 구멍과도 같다. 그래서 셀프로 등 하나를 달아보려는 시도조차 사실은 실재와의 조우라는 공포를 동반한다.


그 앞에 내 몸이 들어선다. 사다리 위에 선 두 발, 무게를 지탱하는 허리, 손끝에서 떨리는 전류 같은 긴장이 공간을 가른다. 손은 전선을 구분하고 이어 붙이며 언어화되지 않던 구멍을 빛의 회로로 바꿔낸다. 낯선 전선은 의미를 얻고, 어두운 구멍은 하나의 조명으로 봉합된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구멍은 나의 몸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질서 속으로 편입된다. 빛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불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둠 속 구멍과 전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보이지 않는 실재가 상징의 층 뒤에 숨은 채로.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몸이란 언제나 세계와 맞닿는 방식이라고 했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해도 세계를 여는 것은 여전히 손과 발이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도구는 손 안에서 드러나며, 몸과의 관계 속에서만 제 기능을 갖는다. 내 손바닥에 잡힌 드라이버는 단순한 쇳덩이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하나의 매개다.


나는 스마트 시대를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몸은 여전히 가장 오래된 시간 속에서 일한다. 레트로한 노동, 원초적인 몸의 방식은 시대착오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플랫폼은 첨단의 언어로 나를 호출하지만 내가 현장에서 꺼내는 것은 낡은 도구와 땀에 젖은 몸이다. 바로 그 낡음으로 오늘의 세상은 여전히 지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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