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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un 19. 2022

좀 천천히 자라주면 안되겠니?

ep.11 폭풍 성장하는 아기들


억울해서 매력적인 눈매를 가진 보리. 제 이름에 딱 맞는 색깔을 가진 털이 보송보송 사랑스럽다. 어떻게 이런 색깔옷을 입고 나왔을까? 깨끗한 아이보리 바탕에 연한 베이지 태비, 그리고 하얀 양말. 색상은 흐리지만 웅크린 뒷모습은 영락없는 땅콩이다. 거기에 유독 파랗게 보이는 눈동자가 아름다움의 정점을 찍는다.



짙은 회색빛 태비가 선명한 호두와 율무는 아기 호랑이같다. 둘은 아직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 눈 크기가 살짝 차이 날 뿐이다. 아기들의 성장 속도가 무섭다. 전날에앞발이 분명 내 둘째손가락만 했는데 다음 날에는 엄지손가락만큼 커져 있다. 엄마 젖을 충분히 먹어서 그런지, 말 그대로 폭풍 성장이다.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쿠키는 세 마리 아기들을 핥아주고 젖먹이고 보듬느라 하루가 고되다. 힘이 드는지 간혹 고양이에게 위험 신호인 호흡 하기도 하고, 초점 없는 눈동자로 멍하니 멈춰 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새끼들이 너무 이쁜지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애달프다. 저도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인데.




생후 12일차가 되니 움직임이 갑자기 활발해졌다. 보금자리 안에서만 뒹굴던 보리가 탈출을 감행한 것이었다! 보리의 모험심을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호두와 율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리둥절해하며 멀뚱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 둘은 여전히 순하고 얌전한 아이들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세 녀석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꼬물거리는 아이들을 보는 우리는 행복의 절정 상태인데, 쿠키는 멘탈이 붕괴된 모양이다. 들이 어디 숨었나 살피고, 누굴 먼저 쫓아가서 집으로 데려갈지 몰라 쩔쩔매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 귀여워 못견디겠다.


전력질주한 쿠키와 혼자만 붙들려 억울한 율무


가출한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넉다운이 된 모습마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깨발랄한 세 아기를 돌보려다 보니 쿠키는 억척스런 엄마가 되어간다. 아이들을 거칠고 호되게 다루는 모습이 조마조마하다. 아기들 다치면 안되는데... 그렇지만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다. 쿠키를 전적으로 믿고 가만 지켜보는 수밖에.




아기들은 거침없이 탐험을 즐기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자리에서 코를 박고 잠든다. 이런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포르투나가 우리집에 축복을 내린 것이 분명하다. 이서 잠든 모습은 평화 그 자체다. 키에게도 꿀 같은 휴식 시간이 된다.


꿀잠에 녹아내린 아기 냥이들


귀여운 것과 부드러운 것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든다. 귀여우면서 부드러운 것 앞에서는 누구 전투력을 상실하고 무릎을 꿇게 마련이다. 깜찍함에 몸서리치며 아기들을 부를 때 나도 모르게 애교 섞인 말투로 ‘아 우리 강아지들’이라고 했다가 화들짝 놀란다. 그렇게 모욕적인 말을 하다니. 묘욕(!)적인 말이라고 해야 할까? 하긴 고양이든 강아지든 한없이 귀여운 건 마찬가지.




Photo by @especi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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