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아기들은 엄마의 그루밍과 타월 마사지로 물기를 닦아내니 제법 고양이 태가 났다. 털이 보송보송해지고, 눈은 뜨지 못한 채 코부터 입 주변까지 짙은 핑크빛이었다. 쁘악쁘악하고 아기새처럼 울었다. 두 마리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짙은 회색 바탕에 태비가 보이고 한 마리는 쿠키보다 옅은 베이지 색이었다.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작은 아기들, 꼬리는 꼭 쥐꼬리 같았고 발에는 실낱같은 연약한 발톱이 어설프게 달려 있었다.
조그만 것들이 먹고살겠다고 제 어미의 젖을 수시로 빨아댔다. 불어났던 여섯 개의 젖이 모두 쪽쪽 빨렸다. 널브러져 있다가도 젖 냄새를 향해 꼬물거리는 아이들이 저들끼리 뒤엉키고 넘어가고 난리통이었다.쿠키는 힘들어서 가쁜 숨을 쉬면서도 아이들이 어떻게 될 세라 끌어안기 바빴다. 잠시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갈 때도 머뭇거렸고,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면 도로 들어가기 수차례였다.엄마 2일 차 고양이의 의젓한 모습을 보니, 출산 후 나흘을 정신을 놓고 있었고 깨어난이후로도 한동안 울기만 했던 내가 하잘것없었다.
충분히 배를 채운 아기들이 잠든 모습을 천사에 비할 수 있을까. 보송보송해진 털은 세상에 없던 부드러움이었다. 인사동의 만가닥 꿀타래처럼 혀를 대면 녹아내릴듯하다. 핑크핑크한 입술은 얼마나 조그마한지, 저리도 귀엽게 헤벌리고 잠들어 사람을 이렇게 홀리는지. 모든 시름을 잊고 넋을 놓은 채 그저 바라본다. 손가락을 코 끝에 살짝 대본다. 숨결도 여리다. 이 귀한 생명들을 어떻게든 지켜주어야지.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맞은 아침, 죽도록 하기 싫은 출근을해야 했다. 그 하루를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퇴근 시간이 되자 집으로 날아가듯 서둘렀다. 지하철 안에서도 내 마음은 달리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나니깽깽이들은 조금씩 기운이 나는지 제 엄마 얼굴을 뭉개고 차고 난리를 피워댔다.그 모습을 놓칠 수는 없고, 아기들을 지키려는모성애가 강한 쿠키 눈치를 봐 가며 사진도 영상도 숨죽여 찍어야 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보고 싶어 상자 속에 몸을 우겨 넣거나 살짝 안아 들면 쿠키는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맴돌았다. 제 새끼를 건드리는 게 다른 동물이나 사람이었다면 발톱을 바락 세우고 덤빌 태세였다. 너니까 참는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틈이 날 때마다 몰래 만져보고, 쓰다듬어 보고, 쉴 새 없이렌즈에 담았다. 털 색깔에 따라서 발바닥 쿠션이 핑크 젤리, 포도 젤리였다.
생후 5일이 되자 아기들이 하나둘씩 눈을 떴다! 단춧구멍 같던 눈이 조금씩 똘망해졌다. 쌍꺼풀도 있었고 푸른빛이 돌았다.눈이 동그래지면서 미모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긴 두 녀석 중에 아이들에게 밀려 젖을 늘 덜 먹게 되는 아이가 막내였다. 그렇게 호두, 보리, 율무는 꼬물이에서 고양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삐약거리던 목소리는 빼악빼악이 되었다.
아기들을 낳고 나니, 또 귀리가 떠나고 나니 두 마리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세 마리와 함께 살려던 우리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아기들 중 누구와도 헤어질 수가 없었다. 둘째를 원했던 우리는 한꺼번에 넷째 고양이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 셋, 고양이 넷이 함께 사는 집. 지인들은 우리 집을 딸기네가 아니라 쿠키네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