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토리가 정체기에 접어들고 악기를 꺼내는 일도 뜸해졌다. 도서관에서 빌린 교재에도 시시한 곡들만 가득했고 유튜브에 올라온 곡들은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려웠다. 독학으로 악기를 연주하다 보니 맞게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득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수업 때마다 두렵지만 벅찬 흥분 상태가 되었다. 실력이 나쁘지 않았는지 강사님은 면허 취소자 아니냐는 립서비스를 했다. 그렇게 한 번만에 면허를 따자마자 지방을 찍고 다시 서울로 운전하고 돌아와 주차까지 잘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브레이크 밟아야 할 순간에 액셀을 밟은 이후 지금까지 운전을 못하고 있다.
동결된 나의 드라이버 라이선스
내 작고 소중한 우쿨렐레도 운전면허증처럼 무쓸모가 되도록 둘 수 없었다. 그래, 무엇이든 누군가에게 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배우기로 했잖아. 내가 잘하는 건 꾸준함이고. 그렇게 마음 먹은 뒤 곧바로 상담을 잡고 등록을 마쳤다. 일주일에 한 번, 일대일 레슨이었다.
첫 시간부터 무서운 말을 들었다. "수준을 알아야 하니 제일 자신 있는 곡으로 연주해 보실래요?" 또 또 심장이 덜컥거렸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최애곡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를 연주했다. "음 네, 알겠어요." 무슨 뜻이지? 욕일까? 너무 형편없었나?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고 레슨은 시작되었다.
새로운 코드, 신선한 곡들. 그 무렵은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을 했는데, 선생님은 입시생도 아니니 쉬엄쉬엄 하라고 하셨다. 애매한 초급이어서 선생님도 무엇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 같다. 빠르게 진도를 진행하며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교정했다. 이후 핑거스타일 곡을 주로 연습했는데 마땅한 악보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만고만 정체 중인 나의 실력.
알고 보니 선생님은 기타 전공자였고같은 곡을 기타로 연주하면 어떤 느낌인지 무심한 듯 화려한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기타음은 풍부하면서 깊고 맑았다. 기타를 배우는 건 어떻겠느냐고 두 번쯤 권유를 받기도 했는데 막상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후엔 기타와 우쿨렐레의 장점을 모아 만든 기타렐레라는 악기도 소개해 주었다. 더 많은 걸 알려줄 수 있고 스펙트럼도 넓어질 수 있는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 몇 달간 고민을 거듭했다. 거절의 말도 계속하기 어려웠지만 오랜 생각의 끝은 이것이었다. 많이 배우고 연주 실력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내 악기를 두고 다른 악기를 들이고 싶지 않다는 것, 이대로 우쿨렐레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이 들어 버렸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