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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10. 2022

너의 이름은 딸기, 쿠키

ep.3 함께 잠든 모습을 볼 때


쿠키는 하얀 털 엄마와 까만 털 아빠 사이에서 난 브리티시 숏헤어라고 했다. 그 사이에서 난 색깔과 무늬치고는 좀 특별하다. 베이지색 바탕에 주황 태비 무늬가 있고, 곳곳에 짙은 브라운이 그을린 것처럼 보여서 이름이 쿠키가 되었다. 식탐이 많고, 그릇에 준 걸 바닥으로 가져가 먹는 것이나, 한 성질 하는 걸 보면 길냥이 기질이 다분한 아이다.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았으니.




쿠키는 참 무난한 고양이다. 가리지 않고 먹고, 잘 싸고, 잘도 잤다. 품에 안고 있으면 배를 내밀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이마가 바닥에 닿을 만큼 꾸뻑거리며 자곤 했다. 그럴 때면 안고 있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입을 틀어막고 숨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바라보았다. 아기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어여쁨과 경이로움을 우리 아이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아기가 그렇듯 아기 고양이도 하루 대부분을 잠으로 보낸다. 잠자고 꿈꾸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깨어 있는 시간의 반은 그루밍을 하며 보내고, 나머지 시간에 먹고 놀고 탐색을 한다. 아기와 아기 고양이 둘 다 키워본 경험으로 볼 때 둘 다 사랑스럽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고양이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아는 수월한 아기라는 점이다.




다 자란 동물들이 아기들을 지켜주는 영상을 볼 때면 감동이 밀려 온다. 그런데 아기 동물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다. 인간보다 성장 속도가 빨라서였을까, 쿠키는 아이의 손길이 귀찮아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고양이가 원할 때는 외면하고, 아이가 원할 때에만 물고 빨고 만지는 게 좋을리가 없는데도 쿠키가 아이를 이해해주는 게 눈에 보였다. 아기 고양이가 보여주는 인내와 배려에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아이는 ‘쿠키 언니’라는 제 새로운 이름을 좋아했다.


딸과 고양이가 함께 잠든 모습은 나를 안도하게 했다. 짜증이 많던 아이도 배려와 참을성을 배워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로를 급히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이것 좀 보라고, 얘들 둘이 이러고 있다고. 아이와 아기 고양이가 뒤엉켜 자라는 나날은 혼자 보기 아쉬운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쿠키가 오고 나서 우리 딸 딸기는 눈에 띄게 자신감이 자랐다. 처음 약속과는 달리 밥을 챙겨주는 일이나 화장실을 치우는 건 뒷전이긴 했어도 제 방에서 혼자 자기 시작했고, 우리가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집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더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딸기는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처음 만난 친구에게도 먼저 말을 거는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과 친구 부모님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 사랑은 아빠 엄마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아기 고양이 쿠키와 서로 배우고 나눈 사랑도 적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Cover Photo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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