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꽃이 피었던 그날
큰딸은 커가면서 자기는 결혼 안 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왔습니다.
큰딸 : 난 결혼 안 할 거야!
나 :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더 빨리 가더라!
큰딸 : 나중에 결혼 안 한다고 뭐라 하지나 마셔요!
늘 이렇게 얘기하던 딸이 결혼하고 싶은 남자친구를 소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습니다.
뒤통수 제대로 맞았습니다.
딸들을 너무 사랑하는 남편은 사윗감이 생기면 제대로 면접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얘기를 늘 해 왔습니다.
남편은 큰딸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 1차는 서류심사를 하고, 2차는 면접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서류는 직장확인을 위한 재직증명서, 혼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혼인증명서, 자기를 소개할 수 있는 자기소개서와 미래 인생 계획서를 서류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면접에선 질문이 10개 정도 있을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남편에게 "당신은 면접도 없이 쉽게 결혼했으면서 너무 심한 거 아녜요?" 하니 남편이 "장인어른은 그렇게 하셨지만 난 그렇게 못하지!"
"결혼 전에 확실히 알아보면 좋잖아?"라고 하는 겁니다.
사윗감은 서류 준비를 모두 해서 딸 편에 보내왔습니다.
나중에 딸에게 들은 얘기지만 그 당시 딸도 남자친구에게 "오빠, 이렇게까지 하는 거 부담스러우면 그만둬도 돼요."라고 얘기하니 사윗감이 재미있고 좋다고 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저의 결혼 준비 시절, 결혼식 준비를 하던 남편의 수첩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준비에 관련된 여러 가지가 메모되어 있던 수첩을 뒤적이다가 수첩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던 남편의 인생 플랜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몇 살에 아이를 낳고 몇 살에 처음 집을 장만하고 등의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 순간 남편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며 '남편감으로 잘 고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남편은 사윗감에게서도 어느 정도 미래 계획이 있는 청년인지 알아보려 한 것 같습니다.
착한 큰 사윗감은 성실하게 서류 준비를 했고 이상이 없으므로 면접일을 잡았습니다.
딸이 면접엔 어떤 질문을 할 거냐고 은근슬쩍 물어봐도 남편은 절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깔끔한 한정식집에서 큰 사윗감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재미도 있고 기억에 남을 이벤트라 생각하고 만나봅시다." 하며 서류봉투에 질문지와 무언가를 챙기고 사윗감을 만나러 나갔습니다.
딸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선택한 평생의 베필이니 우리 부부는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귀엽기도 하고 긴장했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식사가 차려지기 전, 남편의 면접 질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딸과 결혼하려는 3가지 이유, 본인의 성격은?, 장점과 단점은? 인생관 가치관, 결혼하고 싶은 시기’ 등 12가지의 질문에 사위는 본인의 생각을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답변을 듣고 남편은 웃으며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하겠다며 무언가를 꺼내는 거였습니다.
옆에서 보니 링 마술 도구였습니다. 남편이 예전에 봉사 다니며 재미 삼아하던 마술 도구였습니다.
링 마술은 조그만 링이 목걸이 크기 체인 안에 걸리도록 하는 마술입니다.
남편은 성공해서 걸리면 결혼, 안 걸리면 결혼을 못하는 거라고 웃으며 얘기합니다.
사윗감도 웃고 있지만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남편의 마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의 계획대로 첫 번째 도전에선 링이 체인에 걸리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도전, 남편은 큰딸의 콧기름을 바르는 액션을 취하지만 역시 실패했습니다.
세 번째 도전, 이번엔 큰딸의 콧기름 그리고 사윗감의 콧기름을 바르고 기압을 넣으며 "얍!" 하니 링이 체인에 댕그랑 하며 걸립니다.
저는 "와~~~ 결혼할 수 있다!" 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마음 졸이며 지켜봤을 사윗감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남편이 "둘의 콧기름을 합쳐 성공했듯이 둘이 힘 합쳐 잘 살아!"라는 얘기로 사윗감 면접은 끝이 났습니다.
맛있게 차려진 한정식과 함께 술도 한잔 하며 우리의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축배를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사윗감은, 둘째 사윗감 면접은 자기가 먼저 보고 우리가 최종으로 보는 게 어떠냐고 얘기해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우리 집 유머코드를 닮은 사윗감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