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든 순간
"여보~ 나랑 살면서 기억나는 기뻤던 일이 뭐예요?"
거실에서 TV를 보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길래 물어봤습니다.
남편이 침대 위로 푹 엎어지더니 "매일매일이 기쁘지~"합니다.
나는 남편이 또 오글 거리는 농담을 하는구나 하고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가만히 있어서 잠이 들었나 했는데 몸을 뒤척이며 "신혼여행 갔을 때?" "처음 분가했을 때?" "딸들 태어났을 때?" "처음 집 샀을 때?" 합니다.
엎드려서 우리의 옛일을 돌이켜 봤나 봅니다.
내가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큰 아이를 낳고 남편 직장을 따라 시골의 작은 마을로 이사하고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하루 종일 오롯이 큰 딸과 시간을 보내는 게 일과였습니다.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우리의 가장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퇴근시간 무렵이 되면 큰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이 걸어올 길을 따라 걸어서 내려가 봅니다.
우리가 구한 집은 마을의 위 쪽에 새로 지은 빌라여서 큰 길가 사거리까지 걸어갑니다.
사거리 앞에서 큰 동그라미를 만들며 뱅글뱅글 유모차를 몇 바퀴 돌리면 남편의 걸어오는 모습이 건너편에 보입니다.
손을 흔들어 우리의 기다림을 알리면 남편이 뛰어와 큰 딸을 안아 올립니다.
빈 유모차를 밀며 남편과 오늘 우리 아기가 어떤 새로운 행동을 했는지 얘기하며 올라갑니다.
하루 종일 힘들었을 남편의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이 피어납니다.
그 마을에 이사 온 뒤 1년이 지나고 우린 그 마을에 새로 짓기 시작하는 작은 빌라를 분양받았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던 돈의 2배가 넘는 금액의 빌라였지만 회사에서 대출을 받고 무리해서 집 장만을 했습니다.
우리의 첫 집입니다.
대출금 갚을 일이 까마득했지만 우리 부부는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집을 장만하고 이사한 뒤 둘째 딸도 낳았습니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되면 작은 빌라 베란다에 딸 둘이 밖을 내다보며 아빠를 기다립니다. 아빠가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반깁니다.
넉넉하지 않지만 네 명, 우리 가족은 완전체를 이루었습니다.
작은 시골마을엔 단위농협이 유일한 금융창구였습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장 보러 마트도 가고 은행 볼일도 볼 겸 다니기도 했는데, 어느 날 큰딸이 "엄마, 나 장난감 사줘요" 하는 겁니다. 나는 "엄마 돈 없는데?" 하니 큰 딸이 "농협에서 달라고 하면 되잖아!"라고 얘기해 한바탕 웃었습니다. 가끔 ATM기에서 현금 찾는 걸 보고 한 말이었나 봅니다.
자상한 남편과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며 행복이 쌓이고, 아이들이 커가며 주는 기쁨등이 자양분이 되어 조금씩 단단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작은 성취, 작은 기쁨, 작은 행복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 가족을 만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