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꾸려간 하루하루
"인생을 살다 보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올 때도 있는 법이다."
시어머님이 항상 해주시던 말씀입니다.
산을 올라갈 때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듯이 우리 가족의 삶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사업은 몇 년 동안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핑크빛 미래를 생각하며 남편을 응원했습니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사업에 투자도 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며 사업이 힘들어 지다가 결국은 살던 집도 은행권에 넘어가고 우리 가족은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었던 큰딸은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며 부푼 꿈을 꾸고 있었을 텐데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작은딸을 우선 등록시키고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등록금을 마련해서 등록하기로 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자랐던 딸들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도 부모를 탓하지 않고 잘 따라줘서 고마웠습니다.
큰딸과 저는 원룸을 구해 지내고, 작은딸은 학교 기숙사로, 남편은 지방에서 홀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는 남편은 마음이 힘들어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 걱정을 더 많이 했습니다.
책임감 강한 남편은 마음을 추스르며 무슨 일이라도 해보려 했습니다. 철물점에 취직해 일하던 남편은 무거운 물건들을 나르는 일이 많았던 탓에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큰딸과 지내던 저는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남편과 함께 지내기로 했습니다.
쉴 수 없었던 남편은 시골 5일장으로 두부장사를 나가기로 했습니다. 새벽 5시에 두부 공장에 가서 두부를 받아 트럭에 싣고 매일 5일장을 찾아다니며 두부를 파는 일은 초보자에겐 녹록지 않았습니다. 장사할 빈자리를 찾기도 힘들었고 노력만큼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시골 5일장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새로운 인생공부를 하게 되었고 남편은 힘을 냈습니다.
5일장을 돌며 두부장사를 하던 중 택배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 택배기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아파트 같지 않고 시골에선 띄엄띄엄 있는 집들을 찾아, 낯선 시골길을 다니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방학엔 작은딸이 내려와 아빠의 택배일을 도왔습니다. 시골의 좁은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아빠를 돕는 작은딸이 대견했습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택배물량을 나눠 함께 택배를 날랐습니다. 시골엔 택배물품의 종류가 쌀, 곡식등 무거운 물건들이 많아 남편에겐 힘든 일이었습니다. 택배를 시작하고 남편은 점점 살이 빠졌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남편의 배에 복근이 생기고 있다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택배를 하는 덕분에 낯선 시골의 지리를 빨리 알게 됐고 시골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의 책임감으로 힘쓰는 일을 해보지 않았던 남편은 주저앉지 않고 무슨 일이든 하려 노력했고 그 마음을 잘 아는 딸들은 힘을 보태며 응원했기에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낸 것 같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함께 꾸려간 하루하루가 우리 가족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밝고 따뜻한 가족의 긍정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택배기사와 두부장사할 때의 에피소드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