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때문에 도피를 포기했지만

07. 외면하고 있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by 빛새
아버지, 저 대학원 그만 다닐게요.


아버지께 이 한 마디를 꺼내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1년 반 동안 솔직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아버지께 얘기하면서,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연구실에 찾아갔다.




나는 사실 도망치기 위해서 대학원을 다녔다. 20대가 된 나는 커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었고, 그 고민의 답을 찾지 못해서 취직을 포기했다. 취직을 조금 더 미루고 싶어서 대학원에 갔고, 그냥 대학원을 가면 또 헤맬 거 같아서 동시에 독일 유학을 준비했다.


도망칠 곳에서 안식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독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 보았고, 대학원 공부에도 마음 붙여보려 했고, 교수님과 선배님들과 함께 지내는 사회생활도 하면서 대학원에 정을 붙여보려 했다. 그렇지만 진정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모르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껴졌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인생이 아니라 드라마 아닌가. 대학원 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가 대학원을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다.




10여 년만에 찾아간 아버지의 연구실은 예전과 똑같았다. 큰 결정을 내리러 찾아간 거라서 많이 떨렸지만, 오랜만에 찾아간 연구실은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무거운 말을 하러 찾아왔지만,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환경을 만나게 되니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 저 대학원 그만둘게요."

"왜?"


마음속에 굳게 닫혔던 말이 트이면서, 나는 아버지께 대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대학원에 처음 가기로 작정했던 1년 반 전부터 지금까지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렸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던 내가 대학원 졸업과 유학을 위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이니, 부모님께서 진심으로 도와주셨다. 부모님께서 관심과 사랑을 주신 건 정말로 감사하지만, 도망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던 나는 부모님의 그런 사랑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더 부끄럽기 전에 대학원을 자퇴하고 곧바로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신 아버지는 잠시 고민을 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이 한 마디를 해 주셨다.


"너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해주어서 고맙다. 그렇지만 바로 나가기엔 무리가 있잖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내게 남아있는 건 몇백 점의 토익 성적과 대학교 학위, 그리고 한 번의 대외활동 경험뿐이었다. 취직과 미래를 위한 준비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았다.


정곡을 찌르는 아버지의 한 마디에 자퇴하겠다는 생각은 눈 녹듯 사라졌다. 아버지께서는 독일 유학은 포기하더라도, 일단 시작한 국내 대학원 석사과정은 마무리하면서 취직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냐고 내게 제안하셨다. 그리고 난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궁지에 몰려서 대학원 자퇴를 마음먹었지만, 남은 1년 동안 석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버지께 1년 반 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아버지는 나의 생각과 고민을 알고 이를 더 좋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부족한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주셨던 아버지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제 이 모든 상황이 끝났으니, 다시 대학원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Cover : Photo by 00luvicecream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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