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한 목표를 현실로 꺼내 보자

06. 피그말리온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by 빛새

※ 이 글은 독일 유학 준비 노하우를 담은 정보글이 아니라 이를 어설프게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경험담입니다. 독일 유학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찾기 원하신다면, 다른 글을 찾아 주세요.




2019년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면, 도망치듯 들어갔던 대학원에서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국내 대학원에 입학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학업에 큰 흥미를 찾지 못했다. 집-학교-집을 반복하는 지겨운 생활이 이어졌지만, 그 루틴을 버텨냈던 가장 큰 동기는 독일 유학이었다. 이 목표는 '해외에서 공부하면 어떨까?', '독일 대학원은 한국 대학원과는 다를 거야.' 등의 뜬구름 잡는 동경과 '독일에서 영화 관련 공부를 해서 칼럼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나름대로 진지한 생각이 섞여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독일 유학은 내 머릿속에 아주 멋진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아름다운 조각상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던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처럼, 나는 이상과 소망이 만들어 낸 조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다.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은 에로스의 손길을 거쳐 사람으로 바뀌었지만, 2019년의 나는 혼자서 그 조각상을 만들어내려고 1년 반 동안 아등바등 노력했었다. 슬프게도 지금은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2018년 하반기부터 독일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독일어를 공부했다. 독일어를 무작정 공부하다 보니, 내 독일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독일어 능력 시험(Zertifikat Deutsch)에 도전했다.


2019년 4월에는 초급 상위 단계인 A2 시험을 응시하여 통과했다. 하루 만에 모든 시험을 치르다 보니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한 번에 합격하게 되어서 뿌듯했다. 약 1년이 지난 2020년 2월에는 중급 하위 단계인 B1 시험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일부 과목만 합격하는 바람에 B1 자격을 얻지 못했다. 중급 시험은 초급 시험과 달리 이틀 동안 시험을 보았고, 전에 보았던 시험보다 시험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더 큰 집중력이 필요했다. A2 시험을 칠 때보다 조금 더 공부하고 시험 시간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B1 시험도 통과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독일어 능력 시험에서 소정의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독일 유학에 대한 의욕은 점차 떨어져 버렸다. 독일어 공부가 벅찼고, 어느 대학원에 입학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하루 3시간씩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모든 과정을 독일어로만 표현해야 하는 학원을 다녔다. 배우고자 하는 언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들어가면, 그 언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나도 독일어를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배워야 할 분량이 많아지고, 더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교하고 어려운 개념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업 시간에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벅차서 예습/복습을 하기 어려웠고, 이전 수업 내용을 정리하지 않았다 보니 다음 수업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부정적인 수레바퀴 속에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내가 언제까지 이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회의감이 생기게 되었다. 게으름을 버리고 조금만 더 열심히 했다면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 한 발짝을 넘어서지 못하고 넘어져버려서 아쉬웠다.


어학에다 1년 반을 투자하다 보니 독일어 실력은 늘긴 했지만, 내가 어디로 진학해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으로 동경해왔던 독일 유학이 다시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독일 유학 정보를 얻기 위해 DAAD를 계속 찾아보았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그동안 공부한 입학요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깊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또한 대학원별로 원하는 자격증명이 달라서 하나를 확실하게 준비하면 다른 걸 놓치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확실한 목표를 세우지 않고 무작정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망망대해에 나침반 없이 노 저어 가면서 나룻배를 모는 선장 같이 행동했다. 결단과 목표 없이 독일 유학을 준비하다 보니, 그 동력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었다.




대학원 생활도 힘들었고, 독일어 공부도 벅찼고, 어느 독일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황이 지속되니까 그저 놓아 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갔다.



Cover : Photo by Michele Calian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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