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되어, 해야 했던 것들

05. 그런데 안 해서 쓰는 반성문

by 빛새

대학생 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자.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15주가량 되는 한 학기 동안 6~7개의 강좌를 수강한다. 각 수업 별로 시험공부를 하고, 조별 과제를 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등, 더 높은 학점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졸업을 앞둔 학생이라면 학기 중에, 그리고 방학 동안 취업을 위한 다양한 스펙을 쌓는다. 자원봉사를 하거나, 공인 시험 성적을 얻거나, 인턴십을 하면서 졸업 이후의 삶을 준비한다. 대학생의 시간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간다. 성인이 되었으니 고등학생 때보다 자유롭게 일정을 계획할 수 있지만,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면 시간을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럼, 대학원생의 한 학기는 어떨까? 자연계열, 공대 대학원생이라면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가 연구와 실험에 치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연구실에 속하지 않은 일부 인문계 대학원의 생활은 다르다. 연구실에 붙들려 사는 이과 대학원생과 달리, 나는 대학원 수업을 듣는 6시간 혹은 9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시간이 정말 많았다.


대학원생이었던 3년 전의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천금 같은 대학원생 시절에 해야 했지만 하지 않고 넘어갔던 것들을 돌아보면서, 게을렀던 나의 2년을 반성하려 한다.




먼저, 주도적으로 공부했어야 했다. 대학원생의 시간표가 여유로운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분야를 스스로 탐구하기 위해서이다. 2년의 대학원 생활을 돌이켜 보면, 대학원 강좌는 수강생이 작성할 학위 논문의 선택지일 뿐,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학생은 교수가 수업 시간에서 소개하는 학문의 조각들을 잘 살펴서 자기 연구의 방향성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는 시간에 힘과 노력을 더 들여 자기 공부를 해야 한다. 학계의 한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 건 내 몫이었는데,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고 싶어서 교수가 제공하는 부스러기를 내 연구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갈 길을 알아서 찾기 위해서 대학생 시절에 비해 수많은 시간을 받았는데, 그 의도를 무시하고 내 맘대로 시간을 썼으니 참으로 아까웠다.


다음으로, 논문 주제를 일찍 선정했어야 했다. 석사 논문은 학계에 갓 들어온 햇병아리들이 학문적으로 글 쓰는 법을 시험해보는 습작이다. 그러므로 박사 논문과 학술지 논문에 비해 가볍고 얕은 주제를 다루고, 글의 논리 전개가 비교적 정밀하지 않고, 학술적인 근거가 다른 논문에 비해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석사 논문을 읽었기 때문에 '석사 논문은 금방 쓸 수 있겠구나.'라는 교만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1년 후에 논문 심사를 준비하면서 그 생각은 박살 났고, '석사 과정 학생들이 논문을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구나.' 하면서 수긍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남았던 석사과정 1년 차 때 논문 주제를 정했으면, 더 좋은 석사 논문을 쓰지 않았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대학원 석사 논문을 5개월 만에 황급히 마무리했던 가장 큰 원인은 논문 주제를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해 조금 더 넓게 생각해야 했다. 여러 번 누누이 말했지만, 내가 대학원에 진학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진로를 고민하는 선택을 미루고 싶어서였다. 그랬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거나 취직에 대해 시간을 들여 찾아보지 않고, 유학 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2019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학위논문 주제를 발표하는 학술대회나 프로포절 같은 학과 내 프로그램도 하지 않았고, 학회 참석 같은 학과 밖의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큰 선택을 미루고 싶어서 유학이라는 하나의 허수아비에 집중하느라, 국내에서 공부를 더 해서 학위를 취득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공부 외의 진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부족한 내 상태를 인정하고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나의 가치와 가능성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학원을 다니는 건 누군가에겐 큰 기회가 될 수 있었고, 누군가에겐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어 대학원을 다녔던 나에게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공부하기 싫다고, 사회생활 하기 싫다고, 유학 가야 한다고 핑계는 댔지만, 정작 이뤄놓은 게 없었으니 후회만 남을 수밖에. 미봉책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발전책 정도는 되었어야 했다.


허수아비만 세우다가 끝나버린 2019년 한 해, 그럼 독일 유학은 잘 준비하고 있었을까?




Cover : Photo by Pexels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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