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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새 Feb 23. 2024

[4화] 겨울왕국

외로움의 두 얼굴

Let it go Let it go

Can't hold it back anymore.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추운 겨울이 되면 거리마다 이 영화의 주제곡이 울려 퍼졌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바닥에 쌓인 눈을 쥐고 흩뿌리면서 눈의 여왕이 되길 꿈꿨고, 할로윈이나 연말 파티에는 주인공의 코스프레를 한 소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부터 다 큰 어른까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엄청난 팬덤을 이끌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초 대한민국 천만 관객 영화가 되었습니다. 환상극장 4화의 주인공은 바로 <겨울왕국> (2013)입니다.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던 이 영화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겨울왕국> 시놉시스

두려움을 모르는 낙천주의자 안나, 강인한 외모의 산사람 크리스토프, 충성스러운 순록 스벤. 이 셋은 얼음 마법으로 아란델 왕국을 영원히 얼어붙게 만든 엘사를 찾아 나섭니다. 에베레스트와 같은 자연환경부터 신비로운 트롤, 재밌는 눈사람 올라프까지. 다양한 존재와 마주하는 그들은 과연 제때 엘사를 찾아 아란델 왕국을 구할 수 있을까요?


많은 리뷰에서는 엘사를 찾아 나서는 안나 일행의 이야기, 혹은 엘사와 안나의 가족애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엘사와 안나를 가른 외로움에 조금 더 집중해보았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과 멀어지다.


이 장면 이후 두 자매는 성 밖으로 나가지 못 했다.

아주 어린 시절, 엘사와 안나는 늦은 밤 아렌델 왕궁의 빈 홀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습니다. 두 공주는 엘사의 냉기 마법으로 온 방을 하얀 눈으로 채우며 즐겁게 지냈지만, 엘사가 안나의 머리에 얼음 조각을 맞추는 바람에 그의 능력은 숨겨야 할 금기로 치부되었습니다. 


아렌델의 국왕 부부 아그나르와 이두나는 장녀 엘사가 냉기 마법을 다스릴 자제력이 생기길 바라며 두 자매를 사회와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나를 쏜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힌 엘사는 냉기 마법을 다루기(control)보단 숨기기(conceal)에 급급했고, 엘사의 부모님은 머나먼 바다를 항해하던 도중 배가 부서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그나르와 이두나는 두 딸을 사랑했기 때문에 성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하지만 사랑에서 비롯된 과잉보호는 두 사람에게 독이 되었습니다. 한창 뛰놀아야 할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궁전 안에 갇혀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건 엘사와 안나에게 너무 가혹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코로나19 감염자 혹은 밀접 접촉자라는 이유로 1~2주 동안 격리 당했을 때도 미칠 듯이 답답했는데, 그 몇백 배의 시간 동안 비밀을 감추기 위해 사람과 접촉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엘사가 자신의 고민을 터놓을 멘토나 친구가 있었더라면 저주가 된 냉기 마법을 억누르는 데 온 힘을 쏟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안나가 성문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면 처음 만난 사기꾼과 결혼을 약속하는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 자매의 고립은 극을 이끄는 작은 장치였지만, 사소한 장치가 만든 나비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Lonely Elsa.
외로움에 잡아먹힌 엘사


강산이 한 번 바뀔 정도로 길었던 고립은 두 주인공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두 자매의 언니 엘사는 외로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갉아먹었습니다.


안나와 함께 갖고 놀던 엘사의 냉기 마법은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금기가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이 저주가 된 엘사는 냉기 마법을 조절할 때까지 홀로 지내야 했지만, 몸에 깃든 마법을 제어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능력을 다룰 수 없었던 엘사는 결국 그 능력을 감추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성문이 활짝 열린 대관식 날, 자신의 결점을 숨기는 데 성공한 듯 보였지만, 안나의 어이없는 한마디 때문에 평정을 잃고 폭주했습니다.


어린 시절 안나를 쏜 걸 자책하며 혼자 남겨졌던 엘사. 누구와 교류할 수 없었던 오랜 고립은 그에게 마음의 부담을 더했습니다.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한 엘사는 안나를 죽일 뻔했다는 자책,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이질감, 비밀을 들키면 배척당할 거라는 두려움을 홀로 쌓았습니다. 극에 달한 불안과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인해 자신을 다스리는 마음의 빗장이 풀려 버리자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이를 만날 수 없었던 엘사는 자신의 존재 가치와 생각을 부정하는 침묵에 나선에 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을 가두었던 부모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거든요.

보주와 홀에 맺힌 살얼음을 보면 엘사가 노력한 흔적을 알 수 있다.
외로움에 등 떠밀린 안나


안나는 엘사에 비해 비교적 밝게 묘사되지만, 사실 안나 또한 외로움의 피해자였습니다. 만약 안나가 성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면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에서 언니 방을 간절히 두드리지 않았을 것이고, 엘사의 대관식 직전 성문을 개방할 때 삽입된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에서 하늘을 날듯이 기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 안나에게 드리운 고립의 그림자를 살펴봅시다.


엘사의 외로움은 자신을 갉아먹었다면, 안나의 외로움은 새로운 사람을 갈구하게 했습니다. 엘사의 대관식 날 처음 만난 한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안나는 운명의 남자를 찾았다고 생각해 홧김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안나가 성급하게 약혼하는 바람에 언니 엘사는 겨우 지켜왔던 평정심이 무너져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나고 말았고, 자신을 떠난 언니를 찾기 위해 일면식만 있는 욕심쟁이에 조국의 왕궁을 맡겨버리는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성문이 닫혀 바깥세상을 드나들 수 없었지, 같이 놀던 언니 엘사는 매번 거절하지. 사교성을 기를 충분한 자극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안나는 인간관계와 안목을 기르려야 기를 수 없었습니다. 안나가 상상 이상의 낙천성과 삶에 대한 의지로 성 밖을 나온 건 마땅히 칭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대응할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이 단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감정적인 실책을 연이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보상받기 위해 이성 친구를 마구 찾는 사람들이 있듯이, 깊은 외로움은 때때로 새로운 사람을 의존하게 만듭니다.

이게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 지금 만나

외로움은 단절을 낳고, 단절은 오해를 부릅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듯이, 엘사와 안나를 가르는 감정의 골은 점차 커졌습니다. 엘사는 안나가 괴물이 된 자신을 뒤로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랐지만, 아렌델이 걷잡을 수 없는 추위에 빠지게 되자 슬픔에 잠겼습니다. 안나는 10여 년 만에 자신을 맞은 엘사를 보고 행복에 잠겼지만, 끝내 자신을 외면하는 언니 때문에 또다시 상심했습니다. 서로를 향한 얽히고설킨 오해는 극 종반까지 풀릴 듯 풀리지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진심을 두 사람이 확인하면서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폭주하는 눈의 여왕이 된 자신을 지지하는 유일한 사람을 만난 엘사, 사랑을 찾아 사람을 찾아 떠돌던 자신을 끝끝내 받아준 사람을 마주한 안나. 고독 속에서 엇갈려 자란 서로를 진심으로 조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갈등을 풀 수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드리운 그림자는 정반대였지만 그 원인은 같았기 때문에 쉽게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사소한 일에서 삶의 문제가 발생하듯이, 사소한 일이 만든 문제의 해답도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외로움을 녹이는 따스한 이야기를 보는 건 어떨까요?


결국 서로를 믿어주는 게 최고의 위로.

오늘의 환상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환상적인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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