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들의 거울
시계를 돌려 2022년으로 돌아가 봅시다. 2020년 초에 발병한 코로나19 때문에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그 해 연말부터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삶을 사는 와중에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우리를 위로해 주었고, 한 편의 디즈니 영화가 영화관에서 조용히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 해에 개봉한 <스트레인지 월드> (2022)입니다. 이름조차 낯선 이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을까요? 시놉시스를 살펴 보시죠.
<스트레인지 월드> 시놉시스
모든 것이 살아 숨쉬는 미지의 세계로! 전설적인 탐험가 가문 클레이드 패밀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이들, 괴생명체로 가득한 신비로운 땅에서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을까요?
정말 낯선 디즈니
서부극 스타일의 오프닝, 뮤지컬 넘버가 거의 없는 영화, 영화 속에 담긴 수많은 메시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 주인공. 언뜻 봐선 다른 회사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같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든 디즈니 프랜차이즈 작품입니다. <스트레인지 월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주 낯선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 이 낯선 영화는 정말 아무도 모르게 잊혀 버렸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빠르게 제작했기 때문에 잘 만들 거란 기대보다 잘 만들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더 컸고, 그래서였을까 디즈니는 이 작품에 대한 홍보와 배급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너무나 조용히 지나갔기 때문에, 디즈니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은 <엔칸토:마법의 세계> 이후 바로 <위시>가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 작품은 <소울>, <루카>, <메이의 새빨간 비밀>처럼 디즈니+로 직행한 게 아니라 한미일 세 국가에서 정식 개봉하기도 했었습니다.
초반 흥행이 부진하더라도 입소문을 타면 반등할 수 있었던 <엘리멘탈>처럼, <스트레인지 월드> 또한 관객을 끌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이 있었다면 분명 흥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존 디즈니 작품과 다르게 구성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디즈니 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런타임에 비해 메시지와 캐릭터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새로운 팬들을 유입하기에도 어려웠습니다. 혁신과 흥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쳐버렸습니다.
이 작품 이후에 개봉할 디즈니 영화들이 기존의 클리셰를 그대로 살린 작품이거나(<위시>) 인기 있었던 프랜차이즈의 후속편(<모아나 2>, <주토피아 2>, <겨울왕국 3>)이기 때문에, 길게 보면 이런 실험적인 영화는 꼭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실패했기에 당분간은 기존 프랜차이즈를 조금 더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꾸는 혁신이 아니라 장점은 살리고 아쉬운 점을 바꾸는 온고지신의 마음가짐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거울
예거는 자기 아들 서쳐를 자신처럼 세계 최고의 탐험가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참여하는 모든 모험에 자기 아들을 데려갔고, 아들과 함께라면 어떤 고난도 헤칠 수 있었습니다. 산맥 너머를 다다르는 자신의 최종 목표에 거의 다다랐지만, 전기가 나는 식물 판도를 가지고 아발로니아로 돌아가고 싶다는 아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바람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식물을 좋아하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대업을 앞두고 25년 동안 낯선 땅을 헤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쳐는 자기 아들 이든을 자신처럼 세계 최고의 농부가 되길 바랐습니다. 판도 재배에 성공한 그는 원시 문명에 머물던 자신의 조국을 25년 만에 첨단 국가로 발전시켰습니다. 가족을 위해, 조국을 위해 클레이드 농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아들이 자신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든은 농부보다 탐험가가 되길 원했고, 탐험가였던 자기 할아버지에 대해 함구하는 아버지를 갑갑하게 여겼습니다. 서쳐는 자신을 따라오려는 아들을 극구 말렸지만, 이든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가 탄 비행선에 잠입했습니다.
40대가 된 서쳐는 아버지 곁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예거를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농부가 아니라 탐험가를 꿈꾸는 이든을 본 서쳐는 자신도 모르게 이든에다 예거를 투사하고 있었습니다. 예거와 이별한 순간이 매끄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이든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서쳐는 모험가를 꿈꾸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클레이드 3대가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에 성공하고 난 뒤에야, 서쳐는 탐험가로서의 이든을 지지해주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한 노력 없이는 서로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예거와 서쳐, 서쳐와 이든이 겪은 갈등의 양상이 비슷하지 않나요? 하나의 갈등이 등장인물만 바뀌어서 똑같이 재현되었습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도리어 아들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 주지 못하는 한 남자의 양면적인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기 때문에, 자식이 부모가 되어서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인지 월드>는 디즈니의 표현법을 배제해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든 작품이지만, 작품 제목과 달리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회사라도 자신들이 발매한 모든 작품이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디즈니, 픽사는 물론, 워너, HBO, CJ 등 국내외에 내로라하는 영화사도 다 부침을 겪습니다. 비록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스트레인지 월드>의 아쉬움을 밑거름 삼아 새로운 디즈니 프랜차이즈가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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