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어른이가 만든 어린이날 밥상'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먹고 싶었던 음식을 모아본 이 밥상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서양 정찬의 애피타이저로 자주 만나는 수프. 원래 이 요리는 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루(loux)에다가 우유와 채소, 갖은양념을 넣어 간을 맞춘다. 하지만 현대인의 식탁에선 원래 요리법대로 만든 수프 대신 양념 가루에 물을 푼 인스턴트 수프를 더 쉽게 접한다. 밥을 얻어먹기만 하던 10대~20대 때에는 '제대로 된 재료로 수프를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직접 만들어 보고 나니 그 오만한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등의 요리 방송이 한창 대세이던 시절, 난 한 방송에서 인스턴트 가루수프 대신 모든 재료를 직접 갖춰서 요리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걸 만드는 진행자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격려하였고, 요리사의 도발에 홀랑 넘어간 나는 냉장고와 마트에서 수프의 재료를 갖췄다. 버터를 녹이고 밀가루를 풀었는데, 향긋한 냄새 대신 풀 타는 악취가 났다. 몇 번을 시도해 보아도 부드러운 루 대신 타다 만 밀가루 덩이만 나왔다. 실패가 반복되니까, 다시는 밀가루로 수프 만들겠다고 까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질 좋은 재료로 제대로 요리하면 당연히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하지만 수프는 코스 요리의 애피타이저나 간단한 아침 식사로 나오기 때문에 수프에 큰 노력을 쏟기 어렵다. 요리사가 각 잡고 제대로 만든 걸쭉한 크림수프는 당연히 맛있겠지만, 비몽사몽한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다른 주요리도 만들어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지지고 볶고 할 수 있을까? 매일마다 차리는 집밥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일정한 만족을 제공해야 하므로, 맛이 덜하더라도 시간을 줄일 수 있는 인스턴트 수프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