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갑!혜자로운시골 복지관문화강좌 즐기기
읍내 공공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다. 사거리의 진입로에 세련된 분위기의 가게가 눈에 띄었다. 새로 들어서는 카페일까? 아님 옷가게? 나는 궁금해서 가게 밖을 기웃거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여자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나는 조심스럽게 “여기 뭐하는 곳인가요?” 물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는 “아, 도자기 공방이에요.” 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세상에, 이런 시골에 도자기 공방이라니. 나는 놀랍고 반가워 그 자리에서 공방 선생님의 연락처를 캐물었다.
사실 도자기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한 군데는 아니었다. 집 가까이에 있는 도기박물관에서도 여러 번 수업을 들었다. 영암은 이상하리만치 도자기 강좌가 많다. 그것도 거의 무료로. 재료비만 내면 수업을 공짜로 배울 수 있고 집에서 가까운 위치였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박물관에 상주하는 선생님들은 열성적으로 수업해주셨고 실습 공간도 넓고 쾌적했다. 그곳엔 몇 년씩 수업에 참여해서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수준에 도달한 장수 학생들이 터를 잡았다. 수강생들끼리 자체적으로 동아리까지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 정기적으로 전시회도 열었다. 어라, 생각보다 고퀄리티였다.
읍내로 이사를 한 이후에는 공공도서관에서 도자기 강좌를 들었다. 인근 대도시에서 출강을 나오시던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기 전까지 꽤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물론 여기서도 소성비(도자기를 구워주는 값)를 제외하고 전부 무료였다. 귀촌인부터 사진관 사장님, 자퇴한 여고생까지 평소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났다. 도예 수업 자체도 좋았지만 그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는 담소의 시간이 더 좋았다. 도서관에서 강좌가 사라진 이후로 만나지 못했어도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인연들이다.
도서관 수업 폐강으로 아쉽던 차에 도자기 공방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공방 안에 들어갔을 때 도자기 선생님의 미모에 한눈에 반했다. 밝은 미소와 편안한 말투는 물론이고 도예용 앞치마를 두른 채 도자기를 옮기는 모습이 멋졌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의 호감도는 성적 향상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도자기 공방 선생님은 읍내의 사회복지관에서도 수업을 맡고 있었다. 물론 복지관 수업도 거의 공짜였다. 나는 복지관 수업이 있는 분기에는 복지관에서 도자기를 배우고 수업이 없는 시즌에는 공방으로 직접 수업을 다녔다. (자주 만난 덕분에 도자기 선생님과 금방 가까워져서 지금은 같이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공방 수업료 역시 인근 도시의 수강료에 비하면 반값 수준이었다.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도자기 수업을 계기로 나는 읍에서 지원하는 문화강좌 프로그램에 눈을 떴다. 양재, 홈패션 DIY, 한복 만들기, 도자기, 포슬린 페인팅, 천연화장품, 소이 캔들, 방향제 만들기, 천연 염색, 헤어 미용 수업, 요가, 독서지도사, 산야초 특강 등 내가 수강한 수업만 하더라도 열 개 이상이 넘었다. 도시에서라면 전문적인 학원이나 비싼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많은 비용을 내고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아니면 모든 과목을 배우기는 너무 비싸서 대부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민자치가 제공하는 고퀄리티의 수업들은 재료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무료로 수강이 가능했다. 덕분에 일주일이 모자랄 만큼 배우는 것이 많은 취미 부자가 되었다. (친한 수강생들끼리 사적으로 만나려면 각자의 수업 스케줄을 묻고 시간을 조정해야 할 만큼 다들 바빴다)
이것저것 다양한 교육을 듣다 보면, ‘이거다!’ 싶은 분야가 생기는데 내가 몇 년 이상 꾸준히 배우고 있는 수업은 '요가'와 '도예'로 추릴 수 있다. 둘 다 실생활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내면을 다스리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명상에도 관심이 생겨 집에서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시골에선 문화적인 혜택을 받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요즘은 도시보다 오히려 시골이 더 평생학습기관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지원이 많다. (물론 대형 쇼핑몰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 같은 시설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에겐 인터넷 쇼핑과 넷플릭스가 있다!) 종류도 다양해서 어학은 물론이고 컴퓨터나 각종 자격증, 문화 예술 강좌, 요리, 스포츠와 같은 각각의 과목을 골라 취향에 맞게 수강할 수 있다. 아마도 내가 개별적으로 도시에서 이런 다양한 수업을 교육받으려면 전문 학원이나 대형 문화센터에 찾아가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시간만 허락한다면 원하는 만큼 모두 배워도 비용에 대한 부담이 적다.
많이들 알고 있듯이 지방은 인구감소와 인구이탈을 막기 위해 각 지자체마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출산과 관련된 혜택은 물론이고(나는 이곳에서 아이를 낳은 후 출산축하금으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당황했다. 아니, 내가 내 애 낳은 건데 도대체 왜?? 심지어 다자녀도 아니고 첫애인데.) 젊은 청년들의 전입과 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도 다양하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영암은 만 39세까지를 청년으로 보고 있다) 단순 탁상공론이 아니라 꽤 실질적인 주택 지원(전월세 지원 포함)과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청년몰이나 일자리 지원센터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인구를 끌어모으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다. 덕분에 시골의 문화 혜택, 특히 평생학습시스템은 꽤 쓸만한 편이다. 시골에서 산다고 문화적으로 뒤떨어지고 무료할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도시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고급 취미와 실용적인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수업을 듣는 동안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사귀었다. 시골이라는 공간적 특성 때문인지 귀농 귀촌을 하신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초기 정착 귀농 귀촌인은 주민자치모임이 필수처럼 보인다.)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는 농업 지원정책부터 계절에 맞는 작목과 농사법까지 요긴한 정보교환의 장이 되기도 하는데, 농사를 짓지 않는 나도 솔깃할 만한 정보가 많이 오가서 흥미로웠다.
대부분 나처럼 어린아이를 둔 주부나 중년 부인들이 많아 부담스럽지 않은 편한 모임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병을 앓고 몸을 요양할 목적으로 이주한 분도 있었다. (나이가 비슷해서 건강에 관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수업에서 동년배나 또래를 만나 수다를 나눌 친한 친구도 종종 생겼다. 시골이라 젊은 사람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읍내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농축업을 제외한 직업군들, 그러니까 군청이나 면사무소의 관공서 직원이나 신설된 요식업, 곳곳의 카페, 관광지역의 자영업자 같은 노동시장은 대부분 젊은 인력으로 채워지니 면단위에서 읍내로 나갈수록 연령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다 보니 모임에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기도 하고, 일상적인 안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운 사이로 발전했다. 같은 지역이어도 산골짜기에서 혼자 지낼 때와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재미지. 느낄 만큼 서로에게 의지하며 정을 쌓았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서로 가족처럼 지내고, 원치 않아도 깊은 속사정까지 알게 된다. 때때로 멀리 있는 친척이나 가족보다 더 의지가 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관계가 지긋지긋해서 시골로 이주한 사람도 뭔가를 배우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나는 귀촌 생활이 무료하거나 외롭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꼭 지자체 모임이나 평생학습관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 수 없다. 또 배우지 않고는 발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배움'과 '외로움' 같은 중요한 갈증에 대해서 조그마한 우물 정도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