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는데, 다 거짓말일까. 읍내로 이사를 나오니 생각보다 어린아이와 아기 엄마들이 많이 보였다. (아마 애엄마인 나의 눈에는 같은 처지의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아이는 어린이집이 끝나면 일과처럼 옆 아파트 놀이터로 향했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놀이터라 거기에 가면 어지간한 마을 아이들은 모두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어울려 놀다가 마음 내키면 갑작스럽게 ‘우리 집에 가자’며 집안으로 애들을 불러들였다. (이 시기 아이들의 인싸력은 하늘을 치솟는다) 집에서 편한 옷차림으로 늘어져 있다가 불쑥불쑥 들이닥치는 한 무리의 아이들 때문에 깜짝 놀라기를 여러 번, 나중에는 아이들이 올 시간이면 알아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간식을 꺼내놨다.
집이 1층이라 동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연령대도 어린이집 친구부터 초등 고학년까지 다양했는데, 동생을 따라온 초등 고학년 형이 동네 애들을 어찌나 잘 돌봐주는지 나중에는 자주 좀 오라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는 여섯 살 무렵부터 주로 어울리는 무리가 생겼고 집에 오면 가방만 집어던지고 밖으로 향했다. 머리가 조금 크자 놀이터에서 만나는 어린이집 친구들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정자에 앉아 '동네 형'들과 놀기를 좋아했다.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서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유심히 살펴보니 ‘팽이 배틀’이나 ‘딱지치기’ 같은 단순한 놀이였다.
동네 애들은 정자에서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놀았다. 아이는 읍내에 있는 태권도 학원을 제외하면 아무 데도 다니지 않았는데 그건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팽이가 지루해지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담벼락에 매달린 까마중 같은 열매를 따서 먹기도 하고 공도 차며 하루를 보냈다.
뒷베란다 창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면 애들이 놀고 있는 정자가 훤하니 보였다. 나는 집안일을 하다가 틈틈이 세탁실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고 아이가 잘 있나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아이는 정자에서 형들과 저녁 무렵까지 놀다가 내가 창문을 열고 “그만 놀고 와서 밥 먹어라!” 소리 지르면 쪼르르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게 너무 일상적이라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가진 대학 동창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어쩌면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어린이집이 끝나고 다른 친구와 놀고 싶으면 엄마들끼리 미리 약속을 잡아야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애들마다 피아노 학원이며 영어학원, 센터 같은 곳에 다니다 보면 그렇게 약속 잡아 노는 시간도 빠듯하고 눈치 보인단다. 게다가 무슨 팔구십 년대 풍경도 아니고 요즘 같은 때에 무슨 일이 있을 줄 알고 겁도 없이 애만 덜컥 밖으로 보내서 놀게 하냐며, 한소리까지 들었다. 나는 머쓱해져서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친구 말대로 아이 문제에 있어서 안전불감증 인지도 모른다. 도시 애들처럼 고만고만한 시기부터 영어학원이나 음악학원 같은 곳에 보내지 않았으니 나중에 원망의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없다.
열심히 뛰노는 아이의 뒷모습
생각해보면 시골이라고 모든 애들이 사교육 없이 밖에서 뛰어노는 것은 아니다. 요즘엔 시골도 웬만한 학원은 다 들어와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사교육 시장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내가 만난 이곳 엄마들은 대체로 아이들의 교육에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사교육에 욕심내지 않았고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왜 그런지 가만히 살펴보니 이곳 엄마들은 서로 공동체적인 성격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읍내에 있는 초등학교 하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교가 분교이다. 분교는 해마다 학생 수가 점점 감소하고 전교생의 숫자가 몇 명 되지 않는다. 분교를 살릴 대안으로 '혁신학교'로 변신한 초등학교도 있다. 덕분에 한때는 폐교 위기에 처해있던 분교가 ‘무지개학교’(전남형 혁신학교)가 되어 타지에서 전학을 올 만큼 활발하게 운영해 나가는 경우도 보았다. (분교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다루고 싶다) 이런 학교는 선생님과 부모의 협업이 매우 중요하고, 특히 부모들의 열려있는 공동체적 마인드가 핵심이다.
읍내의 학교 역시 도시에 비하면 학생 수가 적은 편이라 일정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도 학부모도 서로서로 사정이 훤한 공동체적인 면모를 띄게 된다. 이웃의 부모가 바쁘면 가까운 옆집에서 잠깐 놀다 오거나 애를 맡길 수 있는 분위기이다. 애가 어릴 때에는 전업으로 집에 상주하는 엄마가 많았고(아마도 여성의 정규적인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일과 살림을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직업군 (자영업, 농축업 등)의 부모가 많다.
도심에서 정신없이 바쁜 워킹맘으로 일하다 보면, 개인의 교육 가치관과 맞지 않아도 아이의 안전과 돌봄의 부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원으로 아이를 돌려야 하는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긴다. 그에 비해 시골은 부모 둘 중 하나가 대부분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경제적으로 여유롭단 소리는 아니다.) 일반적인 맞벌이의 경우에도 조부모가 인근에 살거나(아니면 함께 살거나) 학교의 돌봄 프로그램이 있으니 크게 걱정이 없다. (추첨이 대세인 도심과 다르게 시골은 자리가 남아 맞벌이 가정이 돌봄을 신청하면 백 프로 통과되고, 심지어 맞벌이가 아닌 집도 받아준다.) 들어가기 힘들다는 지역아동센터도 비교적 등록이 쉬운 편이다. 이렇듯 돌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니 억지로 사교육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들 역시 조급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물론, 시골에서도 아이의 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은 존재한다. 인근 도시에서 선생님을 불러 주기적으로 과외를 시키거나 어린 나이부터 전문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오히려 아이가 헷갈리지 않게 노선을 확실하게 정하고 분명한 목적으로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애매한 이상주의 부모보다는 아이의 정서상 더 낫다고 본다.
아이가 어릴 때만 해도 ‘사교육 없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는 게 소망’이라는 부모들도 이상하게 학교라는 경쟁사회에 뛰어들면 ‘아무리 그래도 다른 애들보단 뒤처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거나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어 어려움 없이 사는 것을 보면 사교육에 신경이 쓰인다’ 쪽으로 돌아선다. 그러니까 아이가 행복하고 자유롭게 뛰놀면서 공부에 목매지는 않되 성적은 알아서 상위권을 유지해 좋은 대학에 입학했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부모를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솔직히 나도 망상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시골에는 많은 부모들이 희망하는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탁 트인 자연의 공간이 넘쳐나고 부모가 아이를 직접 케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산에 가면 아이 손을 붙잡고 온 부모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방학이면 근처 바닷가 마을의 할머니 집으로 가서 실컷 놀다 오는 아이들도 흔히 보인다. 굳이 사교육이나 학원이 아니라도 건강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적, 시간적, 인적 여유가 많은 것이다.
부모가 놀이터에 앉아서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매의 눈으로 다른 아이를 감시하지 않아도 애들은 알아서 놀이를 즐기고 부모의 개입 없이 독자적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외동인 우리 아이의 경우 여섯 살 무렵부터 동네 형들과 어울리며 무리의 상하관계, 집단의 단합심, 단체의 협동력, 낄끼빠빠로 퉁치는 눈치 같은 심오한 공동체 생활을 배웠고 나는 이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본다. (물론, 형에게 얻어맞고 오거나 어리다고 놀이에 껴주지 않아 울고 들어올 때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사실, 아이를 잘 기르고 싶은 마음은 도시의 부모나 시골의 부모나 다르지 않다. 내 아이가 구김 없이 건강한 정서를 가진 성인으로 성장해 사회에서 제 몫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어느 부모라고 없을까. 다만,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고, 입장이 다르고, 사정이 다를 뿐이다. 그렇기에 적어도 아이 기르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오지랖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아이 문제에 있어서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비난받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심하게 속삭여보자면,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중한 추억은 아이의 인생 고비마다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곤소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