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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쌤 김엄마 Dec 01. 2021

아무렇지 않은 척 대하고 있지만, 아이 없을 땐 통곡을

무너져내리는 엄마 마음

살아가는 시기마다 맞닥뜨리게 되는 고비가 있다. 그중 자식의 문제는 청장년기에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지속되는 일상의 고뇌인 것 같다. 자식의 일 앞에 평정심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제 앞가림하며 걱정 없이 살아준다면 그것은 부모 된 자의 진정한 복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보건실로 전화를 주신 한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다소 떨리는 듯한 목소리의 어머니는 실례지만 한 가지 부탁을 좀 하겠노라며 말씀을  시작하셨다. 들어보니 최근에 보건실에 자주 오던 한 학생의 어머니였고, 그 학생의 주 증상은 두통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불안, 우울,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고 하셨다.


고등학생 중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학생의 빈도가 적지 않다. 필요한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기질적 문제가 없던 건강한 아이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불안 정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여러 이유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숨이 안 쉬어지는 아이, 편두통이 너무 심한 아이, 하루에 묽은 변으로 수차례 설사를 하는 아이, 가슴이 답답하여 조여 오는 아이, 어지럽고 띵하여 눈앞이 하얗게 된다는 아이... 손은 차갑고 얼굴은 새하얗다. 이럴 땐 차라리 '꾀병이길.. 프로조퇴러이길...' 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증상이 심각하지 않기를 바랄 때도 많다.


다시 돌아가서, 그 어머니는 이렇게 부탁을 해오셨다. "우리 00 이가 공부를 참 잘했었어요. 걱정할 게 없었는데, 고등학교 가더니 성적이 떨어졌고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복습을 철저하게 했고, 아무리 늦어도 그날의 운동을 꼭 하고 잠이 들어요. 말려봤지만, 목소리만 높아지고 화를 낼 때도 있어서 덩치 큰 녀석을 어쩌지도 못했었어요. 고1 중간고사 성적이 1등급으로 나와서 친구들이 우와 대단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많이 받은 적이 있었는데, 고1 기말고사는 3등급으로  떨어졌고, 그 이후로 고2 중간고사도 비슷했어요. 애가 너무 불안해하는데, 난폭해지는 모습도 있어서 많이 걱정이에요. 정신과 진료를 봤는데, 불안장애 또는 적응장애라고 하더라고요. 사흘을 잠 안 자고 공부했다가 이틀을 밥도 안 먹고 잠을 잔 적도 있어요. 거의 탈수 상태 같았어요. 요즘은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열심히 하는데 자꾸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서 제가 너무 힘들어요. 아이 앞에서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야, 천천히 하자. 몸 상하지 않게 하자, 잘할 수 있어.'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대해주고 다독여주지만, 애가 학교 가고 나면 제가 정말 엉엉 소리 내어 울어요. 너무 힘들어요....... 제가 부탁드릴 일은, 우리 00 이가 보건실에 자주 간다고 담임선생님께 들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우리 00 이가 보건실에 가면, 00아, 너무 힘들어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그런 말씀 좀 해주세요. 약만 자꾸 먹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으니, 약 주시기 전에 한 번만 더 살펴봐주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아이에게 격려 좀 부탁드려요.."


일방적으로 다다다다 말씀하시던 어머니 이야기를 네네네네 들은 후 전화를 끊고 한동안 머리가 띵~ 했다. 그리고 이내 보건실을 또 찾아온 아이를 보니 눈물이 핑 가슴이 찡했고, 아이 어머니 목소리가 귀 언저리에서 맴도는 느낌이었다. 아이에게 태연하게 대하면서 아이가 없을 땐 엉엉 울어버리게 된다는 어머니 마음.


아이가 학령이 시기의 산을 넘어갈 때는 스스로 배워가는 능력을 키워가도록 부모와 가족이, 학교와 온 마을이 정성을 기하여 키워나간다. 아이마다 그 고비가 다르고 이유와 시기도 다양하며 그 고비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00이 어머니의 경우, 아이만큼이나 어머니도 예민하고 힘들어 보였다. 아이의 성적과 현재의 문제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정서적 동요가 온 상태 같아서 어머니 역시 우울과 불안의 선 위에 계시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돌아가고 조금 늦은 발걸음을 하게 될지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게 중요할 것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것처럼 서두르지 말길 바란다. 너무 높은 목표와 과도한 자기 성찰은 스스로를 피폐해지게 만들 수도 있어 보인다. 몸을 해칠 정도로 불안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꼭 정신과 진료를 받기 바란다. 초발 조현병이나 초발 기분장애(조울증)의 경우 고등학생 시기에 나타나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례가 많다. 그렇게 20대 대학생활과 사회초년생 시기를 맞닥뜨리면서 정신적 공황상태에 다다르는 안타까운 경우도 적지 않으니 아이들의 정신건강과 정서적 안녕 상태를 잘 체크해보길 바란다. 부디 이 소중한 금쪽이들이 긍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힘들어하는 00 이와 괴로워하는 00이 어머니의 심신의 건강과 평화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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