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해방은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것부터
[나의 해방일지]
손석구 앓이를 한지 일 년이 지났다. 지난 코로나로 묶여 있던 3년의 시간이 해방되면서 나는 문득 작년 이맘때쯤 뒤늦게 몰아보았던 해방일지가 생각이 났다. 몰아보기를 3번을 반복했을 때즈음, 나는 문득 '날 추앙해요'라는 말이 왜 그렇게 구슬프게 들렸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날 채워주지 못하는 나를 당신이 좀 채워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적인 갈망을 큰 소리로 상대방에게 던졌다는 게 낯설었던까?
상담에서 상담자들이 내담자를 만날 때 내적 욕구를 먼저 탐색한다. 드라마에서 미정은 내적욕구를 현실에 맞춰 억누르고 있었지만, 구 씨를 보았을 때 자신의 욕구를 드러낼 수 있을 상대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외지인으로 그 동네를 지나갈 때 우연히 마주쳤던 처음부터 미정은 구 씨를 알아보았다. 또 우연히 자신의 옆집에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묵묵히 일하고 밥 먹을 때마다 본능은 자신의 내면과 닮아 있는 사람을 확신하게 된다. 하루를 견디는데 술만큼 쉬운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매일 몸소 보여주는 구 씨를 보면서, 미정은 자신이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방법과 대조적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와도 닮아 있는 그 사람을 보면서 본능은 계속 구 씨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어느 날, 미정은 구 씨에게 말을 걸고 뜬금없는 부탁을 하고 자신의 세상에 그를 끌어들인다. 조용히 술만 마시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던 사람인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구 씨의 세계에 기습적으로 미정의 정체를 인식시킨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듯이, 미정도 구 씨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마치, 어디에도 자신의 존재감이 없던 자신은 잊고 구 씨와의 세상에서만 사는 듯이 미정은 자신의 미친 존재감을 구 씨에게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감 없는 세상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내적욕구를 구 씨에게 퍼붓는다. "왜 매일 술 마셔요?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내적인 욕구를 드러내는 순간,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향해 움직이는 힘을 얻는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을 아는 것이 곧 삶의 방향을 정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미정의 외침에 구 씨는 태생적으로 주목받을 수 없는 무채색 느낌의 그 여자가 자신과 닮아 있음을 직감한다. '사회생활 힘들었겠구나, 그래서 나한테 용트림 한 번 해봤구나' 그냥 한번...이라고 생각했던 구 씨에게 또다시 미정은 말을 건넨다. "혹시 내가 추앙해 줄까요? 그쪽도 채워진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필요하면 말해요" 삶의 의미가 없던 구 씨에게 자신을 알아주는 것 같은 한마디 외침에 미정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하듯 구 씨는 미정에게 무심하게 내뱉는다. "마을버스와, 뛰어, 뛰라고"
미정에게 길들여지듯, 구 씨도 자신을 뚫고 나올 마음의 기지개를 펴듯 뛰어오른다. 그리고 구 씨도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며 미정에게 묻는다.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이 돼 있는 거?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
해방클럽을 만들어 인간에게서 해방되겠다는 미정은 퇴근길 구 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구 씨 역시 자신에게 갇힌 자신을 조금씩 풀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불안이 엄습하여 다시 도망치고 자신의 갇힌 세계로 돌아가버리지만, 다시 돌아간 자신의 모습에서 구 씨는 미정으로 인해 자신이 길들여졌음을 인지하고 자신의 세상이 아닌 미정과 함께 했던 세상에 있었음을 발견한다.
해방일지의 결말은 미정을 다시 찾아가고, 미정이 구 씨를 향해 자신이 죽지 않고 사는 법을 알려준다. "하루에 5분만 채워요" 순간의 설렘으로 숨통을 트이며 살아온 미정을 보며, 구 씨 역시 하루하루를 미정으로 채워간다. 이 결말에서 교훈은 자신과 닮은 상대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을 수용하고, 자기를 환대하면서 자신의 세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 즉, 타인이 자신을 추앙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 아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자신으로 채워가는 길이 온전한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자,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다. 자신의 삶을 환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