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회복 물약과 발전 방향
직무만족도가 높은 편이더라도 지치는 어느 날은 있기 마련이다. 멍한 기분 마저 드는 그런 때에는 내담자들의 상담 평가가 나의 체력 회복 물약이 된다. 이전에 받았던 평가를 모아둔 파일을 열어 짤막한 메세지부터 긴 시간 고민이 담긴 듯한 내용까지 하나씩 읽어나간다. 분명히 익명인데도 어느 내용은 상담 순간과 내담자가 떠오를 만큼 구체적으로 작성되어 있고, 또 어느 내용은 늘 행복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쭉 좋은 상담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되려 응원이 담긴 것도 있다. 진심으로 상담에 임했던 순간들이 내담자에게도 오롯이 느껴졌겠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다음 상담도 조금 더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이런 이유로 퇴근이 늦어지는 어느 날에도 그날의 상담 평가를 마저 보고 가려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상담 평가는 내게 에너지 그 자체다.
상담 평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상담을 평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우리의 상담실 안에서 오가는 대화는 내담자와의 기억으로만 남는다. 이 때문에 내가 지금 상담을 잘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라도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답을 상담 평가에서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내담자는 상담을 마친 후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점을 가장 큰 기억으로 가져간다. 한 시간의 상담 동안 내가 의도적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전달해야지 하고 마음먹더라도 내담자는 상담 말미에 건넸던 응원의 한마디에 더 큰 도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럼, 평가에도 ‘응원의 한마디가 감사했다’라는 내용이 담기게 된다. 이렇게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내가 내담자에게 전하는 것 중 무엇이 가장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나의 상담 평가 중에서는
- 공감을 잘해주신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다, 친구랑 대화하는 것 같았다, 친절하다.
-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갈피가 잡혔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겠다, 용기가 생겼다.
- 자기소개서가 막막했는데 이젠 좀 알겠다, 애매했던 부분이 속 시원해졌다, 꼼꼼히 봐주셨다.
- 도움 되는 정보랑 사이트를 많이 알려준다, 전문성 있다, 진로와 취업뿐 아니라 다른 영역도 답변해 주셨다.
와 같은 내용이 많았다. 이 상담 평가를 토대로 나는 나의 강점 역량을 공감, 동기부여, 자기소개서 첨삭으로 설정했다. 이 역량은 다른 직업상담사와의 차별성이 되는 것이다.
평가의 특징 중 하나는 내담자들은 상담 평가에서 가능하면 긍정적인 이야기를 남긴다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한 것 같다는 평을 찾기 어려우니, 내가 잘하는 상담 영역을 찾기는 쉬워도 발전이 필요한 부분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니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나의 상담 초창기 평가에서는 공감을 잘해주고 재미있다는 것과 용기가 생겼다는 평은 꾸준히 있었으나, 전문성이나 자료가 좋다는 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공감과 재미, 용기를 주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전문성에 대한 평가가 적으니, 나로서는 갈증을 느꼈고. 상담을 위한 자료 정리와 공부를 반복했더니, 만족스럽다는 피드백이 보인다. 이제는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개선이 된 것이다.
다만 상담 평가가 없는 기관도 있을 수 있다. 예전에 근무하던 곳에서는 강의나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은 일반적인 1:1 상담에서 내담자에게 평가를 요구하는 시스템이 없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으나 내담자의 평가를 받아볼 수 없으니 더더욱 막막한 심정이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자체적으로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구글 폼을 활용해서 내 상담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있도록 문항을 구성해 다회기 상담을 진행한 내담자들을 대상으로 응답을 부탁했다. 보상이 없으면 응답이 저조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명 카페브랜드의 상품권을 10명 정도에게 추첨으로 주겠다고 내걸었다. 상담은 만족스러웠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그랬는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조금 더 개선되면 좋을 지점은 무엇인지, 주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혹시 추천하거나 받은 적 있다면 추천 사유가 무엇이었는지 등. 만족도 조사를 기회 삼아 내가 내담자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모두 항목으로 넣은 후 솔직하게 응답해 주는 것이 나의 상담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감사 인사도 덧붙였다. 이 조사를 통해서 그때 당시 나의 상담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때의 압도적인 공감과 동기부여 관련 피드백으로 전문성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굳이 없는 만족도 조사를 만들어 진행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상담에 대해 무엇이 강점인지 확신이 들지 않고 내담자의 객관적 시선이 필요하다면 진행해 보는 것을 권한다. 꼭 상품을 내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품을 내건 것은 응답률을 높이려는 시도이기도 했으나,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내담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그러니 만약 사비를 들이는 것이 다소 부담이 된다면 그냥 진행해도 된다. 응답률은 다소 낮아지더라도 당신의 상담 개선을 위해 진심 어린 피드백을 해줄 내담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상담 평가를 소속 기관에서 상담사를 평가하기 위한 실적의 도구로만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물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는 상담 평가는 단순 실적을 넘어 에너지 회복의 수단이자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역할이다. 이처럼 상담 평가를 평가 기준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그 이상으로 활용할 수단을 찾아 상담의 길에서 더 유용한 도구로써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