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 Mar 16. 2024

상담사와 스트레스

상담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상담실에 남아

이번에는 상담실에서 나도 모르게 자라나는 스트레스에 관한 이야기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와 보내는 약 1시간은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느 상담은 내담자와 직업상담사가 모두 경쾌한 기분으로 흡족스러운가 하면, 어떤 때는 담담한 내담자와 속상한 직업상담사가 되기도 하고, 또 스스로를 공격적으로 대하는 내담자와 그것이 안타까운 상담사가 되기도 한다. 드물긴 하지만 어떤 내담자는 그저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낼 대상으로 우릴 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에는 촉이 발동하면서 일찌감치 ‘아, 감정노동의 시작이구나’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는다. 그런 하루가 지나면 쇼핑이나 맛있는 저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걸 유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모든 사람들 스스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일터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좋겠다. 내 감정이 힘들게 되면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행복한 일상과 일을 잘 유지하는 데에는 당연히 튼튼하고 건강한 정신 상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데 특히나 매일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대껴야 하는 직업상담사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 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우리, 혹시 타인의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있지는 않았을까? 공통적인 일상 업무에서의 스트레스를 제외하자면, 상담을 통해 받게 되는 스트레스 말이다. 나 역시도 다양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직장에서 갑질, 성희롱, 임금체불을 당한 내담자가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또는 모든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 세상을 향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기도 하고. 가족으로부터 응원과 지지가 아닌 비난과 무시를 받은 내담자가 자신의 모든 것이 부족한 듯 말할 때도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이 두 가지는 안쓰러운 마음에 세상을 향해 불쑥 발생하는 스트레스였다.


한편, 내담자 그 자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내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었던 내담자는, 뒤늦게 깨달았지만 일종의 정신 질병을 앓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는 상담 중 대부분의 질문에 긴 침묵을 유지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다소 뜬금없는 부정적인 표현이 들어간 답변을 꺼냈다. ‘오늘 날씨가 좀 흐리지요?’, ‘취업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나의 첫인사와 마지막 격려의 말에도 침묵을 유지했다. 나는 그와 소통하기 위한 내 나름의 노력을 했으나, 아쉬움이 남은 채 상담이 끝났고 그는 하루 뒤 공개 후기를 남겼다.


‘날씨가 안 좋은 게 제 탓인 것처럼 말해서 어이없고 불쾌했습니다. 직업상담사면서 저한테 취업이 쉽지 않을 거라고 저주하네요.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최악입니다. 니 인생이나 똑바로 사세요.’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유난히 걱정되고 신경이 쓰여 더 세심한 노력을 들였었는데. 한 적도 없는 말을 했다고 하다니! 이후 엉망인 감정으로 간신히 주말을 보내고,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썼음에도 심란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 감정이 가라앉은 것은, 그는 모든 대상에게 비난이 섞인 후기를 남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였다. 그때부터는 스트레스가 아닌 안타까운 마음이 되어, ‘그의 심리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무언가 더 나았을 텐데’, ‘늘 모든 사람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 처럼 느낀다면 정말 힘들 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심란한 감정 상태일 때 만난 내담자에게 내 감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일었다. 이 덕분에 이후 내담자를 만날 때, 이 사람이 직업 상담을 원하지만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게 되었다. 주변 심리상담사에게 어떻게 하면 내담자가 불쾌하지 않게 무료 심리상담을 알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어볼 수 있었다.


만약 운이 좋게 모든 상담이 경쾌했더라도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는 존재할 수 있다.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이것쯤이야 별것 아니라며 애써 부정하고 괜찮다 넘기다 보면 언젠가 스트레스가 눈덩이처럼 더 크게 불어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스트레스에 지지 않고 잘 이겨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각자의 방법은 모두 다르겠지만 일에서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해결 방안으로 두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좋겠다. 나는 내담자가 작성한 상담 후기나 개인적으로 전달 받은 장문의 감사 인사나 합격 소식을 모아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상담이 잘 풀리지 않았거나 다소 무례한 내담자를 만났을 때는 이 에너지원으로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되새기고 스트레스를 조금씩 낮출 수 있었다.


사실 직업을 넘어서 우리의 삶에서도 모든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는 하기 나름 아닌가. 아무리 좋아하는 직업이더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 평소 업무 중, 가장 힐링이 되는 부분을 스트레스 해소의 도구로 이용하는 등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나약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한 가지 내가 믿는 것은, 스트레스를 겪고 그것을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더 단단해지고 더 나아질 거라는 것이다.

이전 16화 정보, 자료, 직업상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