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는 마음에 대한 변론
세상은 자꾸만 뒤를 묻는다
너 거기서 왜 나왔느냐고
이름을, 경위를, 사유를 쓰라며
하늘도 등본 떼듯 나를 조회한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지만
사실은 자리에서 미끄러졌던 거다
의자에 남겨진 체온만이
내가 거기 있었음을 증명했다
도망이냐고? 응, 맞아
정확히는 ‘튀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지
눈치 보다가, 버티다가, 툭—하고
금이 가던 하루를 깨고 나왔으니까
그리고 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고
엎질러진 나날 틈새로 작은 빛이 흐르는다.
우리는 아직,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아주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숨이 트이는 그 순간들을
아무도 모르게, 낙원이라 불러본다
"살다 보면 ‘도망’이라는 단어가 꼭 나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겨내야지, 버텨야지' 말이 당연한 응원처럼 들리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도망도 삶의 한 방식일 수 있다고.
어떤 자리는 나를 짓누르고, 어떤 공간은 나를 말라가게 하며, 어떤 관계는 나를 점점 투명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떠나야만 살아남습니다. 뿌리 뽑히듯 나와야만 다시 피어날 수 있습니다.
떳떳하지 않다고, 미련하다고, 나약하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도망친 그곳에 낙원이 있을 수 있다고, 아니, 낙원이 없더라도 숨이 트이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머물 자격이 있는 곳’이라고요.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살아갑니다.
다시 웃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꿈꾸게 됩니다."
도망친 당신에게, 그 도망이 당신을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걸음이 다시 ‘머무름’이 될 수 있기를.
그러니 부디, 당신의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