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엮어내기 17화

사라져도 살아지더라

존재의 본질, 부재 속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by 김챗지
51. 사라져도 살아지더라.png


처음엔
그가 없으면
나도 없을 줄 알았다


숨결 하나
눈짓 하나에도
나는 매달려 있었다


그가 웃으면
내 하루도 살아졌다


그러다
그가 떠났다


세상이 무너질 줄 알았는데
해는 떴고
물은 끓었고
버스는 멈췄다


나는 먹었고
말을 했고
심지어, 잠이 들기도 했다


놀라웠다


그토록 전부 같던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살고 있었다


마치
없어진 줄 알았던 길이
다른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던 것처럼


사라져도
살아지는구나—


그 말끝에는
슬픔보다
조금 더 깊은
이해가
조용히 고였다




"'너, 혹은 이거 없인 나 못 살아.'
우리는 종종 그런 말을 믿습니다.
사람에게, 일에, 어떤 믿음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기댑니다.


그러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전부 같던 것이 사라진 후에도
조금씩,
천천히,
살아지게 만듭니다.


처음엔 겨우 버텨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익숙한 동작들이 몸을 기억하고,
마음은 스스로의 속도로
다시 움직입니다.


살아진다는 건
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부재 속에서도
삶이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는 뜻입니다.


“끝났다”가 아니라
“계속된다.”
그 무심하고도 냉정한 진실이
오히려
우리를 또 하루 살게 합니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 없이도
그 시간 없이도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덜 아프게 놀라게 될 겁니다."



그저 버틴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기록이며,

결국 살아낸다는 건
자신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는 증거입니다.
keyword
이전 16화무엇이 당신을 붙잡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