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09:00

by 권혜주LUCKY JJU

09:00

아이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둘러본다. 엄마 잔소리 조금이라도 덜 들으려 때맞춰 일어나 준비하고 지각 않고 학교 다닌다고 니들도 고생과 수고로움이 많겠다고 짠한 마음이 드는 몇 초 동안은 얼음!!! 순식간에 땡!!!! 소머즈 초능력 렌즈에 스캔되는 1호 2호 아들 방바닥을 점령한 잠옷, 태권도복, 책상 아래 구석에 밀어 넣어둔 양말, 책상 위 물컵, 가방 정리하다 버려진 *A4용지들을 분리수거하듯이 양손 가득 들고 나와 세탁실, 휴지통, 싱크대 동선대로 분주히 다닌다.



*A4용지들

수업시간에 한 내용들이 보인다. 글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악필이고 내용은 감동과 유치가 짬뽕되어있다. 가끔 아직도 사람을 졸라맨으로 그리는 만화 습작들도 보인다. 수업시간이 충분히 상상된다. 돌아가면서 발표도 했을 테지. 내가 살면서 제일 싫었던 것 중 하나가 돌아가면서 말하기였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에선 안 할 줄 알았는데 회의시간마다 돌아가면서를 시키는 거다. 와~ 정말 그 이후론 ‘돌아가면서~~’ 네가 이겼다고 인정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런 엄마의 1호와 2호가 돌발(돌아가면서 발표하기) 얼마나 하기 싫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 아이들이 그냥 ‘돌발’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빨리 인정하고 살아가길 바란다. ㅎㅎㅎ

아들 1호는' 프로젝트Z '라는 시나리오 쓰기 과제가 있었나보다. 아들2호는 큰 집에 졸라맨이 살고 있나보다. 층고가 높아(공간이 너무 남으니) 복층집으로 하면 어땠을까 싶다.^^


09:30

그냥 멍 때리면서 앉아있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세탁기 돌린다. 밝은 색 옷 빨래들이 먼저다. 남은 양말과 짙은색 계열 옷은 다음 타임을 기다려야 한다. 색 빠짐이 있는 옷과 없는 옷 분류기준으로 세탁을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오랜 습관에 묻혀 쉽게 시도되지 않는다. 아이들 아토피 없이 잘 성장하고 있고, 이래나 저래나 흰 양말의 발바닥은 손빨래나 심지어 삶아도 상태가 소름 끼치게 하얘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나니 (난 절대 사주지 않지만 2호가 유독 태권도에서 받은 로고 있는 흰 양말만 애용함) 세탁 후 옷에 남는 향기가 깨끗하고 청결한 사람 이미지를 더 좋게 해주는 섬유유연제를 취향에 맞게 잘 고르는 것이 시간과 노력 대비 남는 장사인 거다.

세탁기 돌아가는 동안 아침밥 먹은 그릇 설거지 주방 정리정돈을 한다. *식기세척기 돌리자니 몇 개 안 되는 것 같고, 손수 하자니 매끼 때마다 이게 뭔 짓인가 싶고...

그래서 가끔은 아침 설거지랑 점심이랑 모아서 점심때 한 번에 하기도 한다. 누가 나 대신 설거지해 줄 거 아니면 절대 “살림은~~”으로 시작하는 간섭 같은 잔소리는 듣지 않을 각오다.


*식기세척기

요즘 주부들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다는 필수템. 식기세척기 있어도 안 쓰게 되던데 이건 각자 라이프 스타일대로 가 맞는 말이다. 보통 12인용 세척기인데 초벌 음식물 제거 안 해도 된다고 광고는 하지만 사랑하는 신상 식기세척기를 아끼는 주부 마음에 초벌 세척하고 허리 숙여 칸칸이 정렬하고 살균 건조까지 되면 그릇장으로 옮겨 정리해야 설거지가 끝난다. 바이러스들의 공격에 각자 위생이 중요한 만큼 살균 건조는 탐나는 기능이지만 나의 5만 원짜리 6년 차 한샘 정리함에서 자연건조되어도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 아직은 그걸로 족하다.